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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are of Awareness May 14. 2024

잘하고 싶으면 '많이' 보다 '자주' 해라.

한 번에 왕창 보다 매일 조금씩이 낫다.


나는 유튜브 중독자였다. 내가 생각할 필요 없이 남이 창조한 세계에 나만 갖다 얹으면 됐다. 그 생각 속에서 난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공상 중독이었다.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되는 것도 하나 없고 남보다 비참해 보이니 자유로운 공상의 세계는 완전한 낙원이었다. 공상에 빠질수록 가까운 사람들과 현실에서 멀어졌다. 화려한 공상의 끝은 자기혐오의 시작이었다.


인생의 끝자락까지 갔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읽어지지 않았다. 한 문장도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귀찮아서 안 읽었을 뿐이지 읽으면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나는 글을 읽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잘한다고 굳게 믿었던 능력이 다시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녹슬어 버렸음을 알게 되는 건 고통이다. 읽는 능력마저 상실했다는 현실은 안 그래도 자기 비하 심한 나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때 나를 이렇게나마 살게 해 준 합리화가 또다시 발동했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책 읽고 살았다고.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어차피 유튜브에 다 있는데 뭐 하러 귀찮게 읽어. 다 요약해서 핵심만 말해주는데 그거 들으면 되지.' 그렇게 또다시 유튜브를 탐닉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문서 정도만 읽고 쓸 수만 있으면 됐지라고 합리화했으나 그리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책을 들었다 놓았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독서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나오는 책 읽는 법에 대한 콘텐츠는 모조리 봤다. 유튜브를 끊기 위해 유튜브를 보는 아이러니. 그게 나의 수준이었다. 


소비하듯 보는 콘텐츠에서 내가 건진 건 없었다. 그렇게 유튜브를 봐도 남는 게 없었다. 무의미한 콘텐츠 소비였다는 사실을 또 깨달았다. 나는 생각하는 능력이 마비되었던 것이다. 근육도 쓰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퇴화한다. 내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발 끝부터 허벅지 끝까지 통깁스를 한 적이 있다. 석 달 가까이 지나 깁스를 풀었을 때 얇아진 다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허벅지가 왼다리의 절반도 안 됐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몇 주가 소요됐다. 뇌도 똑같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생각하는 능력이 퇴화된다. 내 의견이 뭔지 생각이 뭔지 내가 누군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말하는 모든 지식은 유튜브에서 본 것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책 읽는 기법 중에 머리에 하나 남은 게 있었다. 소리 내어 읽으라는 조언이었다. 


큰 목소리로 읽으면 좋지만 환경상 어려운 경우는 내 귀에 들릴 정도로만 읽어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가족이 있을 때도 방문을 닫고 소리 내어 읽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소리는 안 내더라도 입술과 혀를 읽듯이 움직이며 읽었다. 그리고 주어부와 서술부, 형용구를 구분하여 의미 단위로 끊어 읽었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읽었다. 한번 읽고 이해가 안 되면 몇 번이고 천천히 의미 단위로 끊어가며 소리 내어 읽었다. 하지만 10분도 못 가 다시 유튜브를 찾아봤다. 그럼에도 책 읽기는 의식적으로 놓지 않았다. 유튜브 보기 전에 책을 읽고 보고 난 후에도 꼭 읽었다. 10분 읽다 딴짓하던 시간이 15분 20분 30분 1시간… 스마트폰 보다 책을 잡고 있는 시간이 점점 늘었다. 지금은 글이 잘 안 읽히고 잡생각이 떠올라 책을 놓고 시계를 보면 1시간이 지나있다. 신기하게도 배꼽시계처럼 1시간이 되면 독서능률이 떨어진다. 그래서 '1시간 읽고 10분 휴식'이 나에게 맞는 루틴이 되었다.


내가 책 읽는 습관을 자리 잡게 할 수 있었던 가장 주효한 요소는 '빈도'였다. 몇 줄 못 읽고 다른 짓을 해도 무조건 읽었다. 유튜브를 보고 싶으면 책을 잡고 한 줄이라도 읽었다. 한 줄이라도 읽지 않으면 스마트폰을 보지 않았다. 단, 한 번에 많이 읽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읽기 싫어도 한 줄은 읽는다는 기준하에 내가 읽고 싶은 만큼만 읽었다. 더 자주 읽기 위해 아예 핸드폰을 책 밑에 두었다. 핸드폰을 보고 싶을 때마다 책을 드니 읽는 횟수도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니 뇌리에 박힌 문장을 곱씹으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나도 모르게 깨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전에는 이해를 못 해 한 장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은 가슴에 파고드는 문장을 만나면 음미하고 사색하느라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나도 이전에는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는 시작도 안 했다. 하루에 10분을 무시했다. 단시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효율성의 저주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이 진보하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만 하는 구조는 단단해진다. 단기간 고성과의 압박이 하고 싶은 것을 외면하고 포기하게 만든다. 하지만 실상은 단기간에 무언가를 이루기 어렵다. 그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평생 운동 안 해본 사람이 갑자기 3대 500을 치려고 하면 크게 다치고 탈이 난다. 잘 살아보려고 한 운동을 평생 안 하게 된다. 좋은 습관 만들기도 조금씩 부담 없이 접근해야 한다. 좋은 습관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평생 해야 할 동반자다. 


책을 읽는 습관이 안되어 있는 사람은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 잘 안 읽힐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하루 한 줄, 한 단락만 제대로 읽어도 3개월이면 다시 읽을 수 있다. 중요한 건 한 줄이라도 매일 읽는 것이다. 습관은 양도 중요하지만 빈도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 자주 하는지가 습관 안착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하루 날 잡아서 왕창 읽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자주 읽는 게 습관형성과 유지에 훨씬 유리하다. 적게 읽어도 좋다. 자주 읽어라. 이 것은 비단 독서뿐 아니라 모든 좋은 습관을 정착시키는데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나쁜 습관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틈만 나면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손톱 물어뜯기, 다리 떨기, 핸드폰 보기 등. 나도 모르게 틈만 나면 한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빈도가 높으면 큰 습관이 되어 평생을 따라다닌다. 짬짬이 하는 사소한 행동을 무시하지 마라. 그 행동을 잘 다스려야 삶을 넓게 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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