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는 골목길에서..

가난했던 어릴 적, 나에게는 꿈도 사치였다

by 강동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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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던 청소년기, 나도 누군가의 미래였다


뜨거운 여름엔 냇가에서 참외를 식혔고, 겨울이면 군불을 지피는 아랫목에서 삶의 온기를 배웠다. 하루가 저물면 마당 위로 별이 떨어졌고, 대겸은 생각했다. ‘부산에선 저 별도 안 보이겠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어머니는 말했다.


"대겸아, 네가 아니면 안 된다."


대겸은 시골에서 부산으로 상경했다. 봄이면 고샅길엔 흙먼지가 일고, 여름이면 논두렁에 메뚜기가 뛰놀던 마을을 항상 그리워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들꽃은 바람에 흔들렸고, 뒷간 옆 공터엔 햇살이 머물렀던 그 시간이 그렇게 아름다웠는지..


대겸이의 마음 한 구석이 저려왔다. 저녁이면 밭일을 마친 어머니의 구부정한 등 뒤를 따라 걷던 시절. 세상은 그저 ‘살아내는 것’이었다. 가난했지만 익숙했고, 외로웠지만 무너지지 않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외로운 도시 생활을 견뎌냈다 학교를 다녀온 어느 날, 두 눈을 감고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누나들은 결혼해 집을 떠났다. 열여섯, 대겸이는 그렇게 원치않게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부산은 이름만큼 크고 복잡한 도시였다. 지하철, 광고판, 교복 입은 또래들. 말투도, 눈빛도, 옷차림도 달랐다.


“신발 그거 뭐야?”


“가방 존나 옛날 거네.”


대겸이는 웃으며 넘기려 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점심시간이면 교실 구석에서 보리밥 도시락을 조용히 먹었다. 반찬은 멸치와 김치뿐. 부끄러움이 밥보다 먼저 목에 걸렸다.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형편없어도 미안해하지 마라. 배고프지만 않으면 된다.“


학원은 꿈도 못 꿨다. 문제집 하나 살 때도 가격부터 봐야 했고, 육성회비는 늘 밀려 교무실에 불려 다녔다.

“대겸아, 부모님 좀 모셔오겠니?.”


학교에서 집까지 세 시간거리. . 대겸이는 버스비조차 없어 걸어서 집을 가야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겸이는 이불을 덮고 소리 없이 울었다. 대겸이의 삶은 공부는 사치, 생계가 우선이었다. 새벽엔 신문을 돌리고, 방과 후엔 시장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이렇게 악착같이 번 돈은 육성회비와 동생들 용돈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장손이었다. 누군가는 집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결국 고등학교는 중퇴했다. 공장에 들어가 쇳가루를 마시고, 용접 불꽃에 눈을 데었다. 손바닥은 갈라졌고 어깨는 무거웠다.


“괜찮아.. 나아질거야, 대겸아, 힘내자..”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피가 나도 괜찮다며 붕대를 감았다. 어머니는 갓김치 하나로 끼니를 버텼고, 동생들은 아직 학생이었다. 그렇게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가다 대겸은 스무 살에 자원입대를 했다.


대겸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뿐이였다. 훈련소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꿀 같은 순간, 어머니의 전화 한 통이 다시 현실로 끌어냈다.


“대겸아, 미안하다… 네 동생 등록금이…”


너무 가난했던 대겸에게는 남들 다 가는 군대 조차 사치였다. 조기 전역 후 다시 공장으로 출근하게 된 대겸.

“언젠간 나아지겠지..괜찮아, 대겸아.. 괜찮아..”


대겸이는 잠을 줄여가며 야간 기술학원에 다니며 용접, 설계, 프레스 조작을 배웠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앉은 교실에서,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기술이 익자, 그는 설계도를 읽고 기계를 조립할 줄 아는 기술자가 되었고 작은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게되었다. 여느 평소 같이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선배 한명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대겸이 덕분에 일이 쉬워졌어.”


대겸이는 순간, 울컥해 눈물을 쏟을뻔했다.


퇴근 길에, 골목 어귀에 멈춰 섰다. 가로등 아래 길게 늘어진 그림자. 그 안엔 시골의 흙투성이 소년, 교실 구석의 외로운 학생, 공장에서 땀 흘리던 스무 살 청년이 함께 서 있었다. 대겸은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나는 누구의 미래였을까.”


“내가 누군가의 희망일 수 있을까.’


내세울 학벌은 없지만, 어머니에겐 든든한 아들이고, 동생들에겐 길을 열어준 형이며, 자신에게는 결코 포기하지 않은 삶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대겸이는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가난도 끝이 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이 골목길 끝 어딘가 있을 햇살 같은 내일을 꿈꾸며 대겸이는 묵묵히 또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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