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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게바라 May 19. 2024

홍콩의 70%가 산이라니(2)

Lau Shiu Heung 저수지

홍콩의 70%가 산이라니(2)

홍콩 관광청 홈페이지에는 유용한 정보가 많다. 각종 관광지와 행사, 공연정보에서 쇼핑 정보까지 다양하다.  

그중 초보자를 위한 산행 코스가 소개되어 있는데 첫 번째로 올려진 곳이 Lau Shui Heung 저수지다. 사진을 보니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저수지에 비추면서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출처: 홍콩 관광청

신계지역에 있어서 집에서는 멀었지만 코스 난이도도 낮고 시간도 3시간으로 적당하니 주말운동으로는 딱이다 싶었다. 게다가 첫 번째로 올라가 있으니 1등으로 좋은 장소일 거라 생각했다.

가기 전에는 얼마나 사람들이 많을까 싶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웬걸! 없다

어쩐지, 미니버스도 혼자 타고 갔으니 그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외국인인 데다 혼자인 나는 아무래도 등산객이 적당히 있어야 안심이 되는데 조금 난감했다.

일단 관광청에서 추천하는 코스로 나비보호 구역부터 시작했는데 사전에 예약을 하는 시스템이라 출입을 금지했다. 어설픈 문이 살짝 열려 있어 들어가도 모를 거 같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출입을 금지한 이유가 있겠지

 일단 좁은 계단길로 산행을 시작했다. 가파른 오르막 계단길을 올라야 하는데 중간중간 멀리 도심지와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는 묘들이 있었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모여 있다. 그들의 살아생전 희로애락은 알 수 없으나 경치 좋은 곳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을 망자들이 상상하니 '참으로 명당이로구나' 싶다.  혼자 있어 그런가 길 양 옆의 묘지에서 낑낑대며 올라가는 나를 무심한 얼굴로 쳐다보는 상상까지 이르자 조금 오싹해지며 어두운 밤 담력테스트 장소로도 가능하겠다 싶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길을 올라가니 넓은 산책길이 나오는데 그때서야 등산객 몇 명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올라온 길은 넓은 산책길 중간에 있는 샛길이었다.

 날이 흐려서 그런가? 등산객이 거의 없다. 홍콩 관광청에서 추천한 곳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 있데 넓은 산책길의 끝에는 등산객 5, 6명이 앉아서 쉬고 있다. 간이 화장실도 있는데 모기가 너무 많아서 기겁을 하고 도로 나왔다

그 이후부터 실제 본격적인 하이킹이 시작되는데 첫 번째 목표지점인 Hok Tau 저수지로 가는 길이다. 표지판을 보니 중간에 Cheung UK 가 있는데 뭐지? 하며 걸음을 옮기니 몇 채의 폐가가 있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폐가가 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하며 주의 깊게 보니 사람들이 산 흔적이 생생하다. 언제 지어진 집들일까?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행복했을까? 쓸쓸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몇몇의 남성이 쟁기를 들고 밭을 갈고 아이 한 둘이 냇가에서 돌을 뒤져 가재를 잡고 여자들은 집에서 밥을 짓는 상상을 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다 죽었을까? 아까 지나친 무덤의 주인들일까? 요즘은 왠지 폐가를 보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나이 탓일까? 왜~내 모습 같나

마을 지나니 그때부터는 정글이다. 도무지 사람도 없는 이곳을 왜 추천했나 싶었는데 길을 걸을수록 알 것만 같다. 자연이다. 완전 자연! 길은 좁고 나무로 둘러싸였으며 새가 끊임없이 지저귀고 알 수 없는 벌레가 앵앵거린다. 이 길에선 갑자기 어떤 야생동물을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다. 홍콩귀신이 나와도 이해할 것 같았다. 아마 사람이 없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 테지만 여긴 진짜 자연이었다. 인간의 흔적이 최소화되어 있는 자연이며 그나마 있는 개울을 건너는 다리마저 부서져 있고 산사태가 난 사면 위를 위험스레 걸어야 했다.

hok tau 저수지에 도착하니 날이 흐려서 감탄을 할 정도의 풍경은 아니지만 주변 쉼터도 한가롭고 사람도 몇 명 있어서 잠시 쉬어갔다. 전형적인 홍콩의 저수지다. 높은 댐과 깊은 물과 나무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낸다

잠깐 땀을 식힌 후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 Lau Shui Heung으로 가야지... 다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 후 도착해 보니 물이 반쯤 빠져있었다. 실망이 너무 커서 사진조차 찍지 않았다.

시간을 재보니 2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졌어고 다리가 뻐근한 게 조금 단단해졌다.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버려진 마을과 평원과 어둑어둑한 숲길. 새들의 끊임없는 노래. 홍콩산행에서 보기 힘든 계곡에서 세수하기. 사실은 모든 것이 좋았다. 이 정도면 됐다. 뿌듯했다.

버스 타러 가는 길에 커다란 바베큐장을 지나쳤는데 몇몇 가족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만석일 텐데 자리가 많이 비었다. 나도 그 틈에서 고기 굽고 맥주 한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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