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게바라 Jun 18. 2024

그 섬에 가고 싶다(3): 홍콩 라마섬

홍콩인들의 소풍장소

홍콩에는 수많은 섬이 있다. 센트럴, 완차이, 빅토리아 피크가 있는 홍콩의 중심지가 있는 홍콩섬, 공항과 옹핑 케이블카가 있는 란타우 섬등 뿐 아니라 사람이 안 사는 섬까지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그중 라마섬은 홍콩에서 4번째로 큰 섬으로 최근에 티브이 여행프로그램뿐 아니라 유튜브나 블로그로도 많이 알려지고 있는 관광지이다. 

하지만 서울에서만 살았던 내게 섬에 대한 이미지는 멀고 배를 타야 하니 번거로워 큰맘 먹고 가는 장소였다. 그래서인지 수 일전부터 주말에 라마섬에 가리라 다짐을 했지만 막상 주말이 되니 '굳이 라마섬까지 가야 할까,  배 잘못 타거나 돌아오는 배를 시간을 놓쳐서 못 타면 거기서 하루 자야 하나' 하며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얼마 전 박물관의 선사시대 전시품 중에 라마섬에서 출몰한 유물을 많이 봐서 인지 시간적으로 더 멀게 느껴졌다. 

옷을 차려입고 문을 여는 순간까지도 설렘보다는 귀찮은 마음이 컸지만 날이 너무 좋다. 오래간만에 햇빛이 반짝이는 주말을 그냥 집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배를 타러 가는 길에서도 되돌아갈까 하며 망설이며 센트럴 부두에 도착하니 마침 배가 3분 뒤에 출발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뛰길래 나도 모르게 뛰어가서 얼떨결에 배를 탔다. 

배에는 어린이, 노인, 서양인, 동남아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대부분 관광객으로 보였다. 3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는데 홍콩에는 참 배가 많구나 하는 당연한 생각을 했다. 연신 좌우로 배가 지나갔다. 그리고 바다는 참 물이 많네, 얼마나 깊을까, 이 많은 물이 도대체 어떻게 있는 걸까, 빠지면 죽겠구나.... 하는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다 보니 금세 배가 라마섬의 Yung Shue Wan 부두에 닿는다.

라마섬에 도착하니 사람은 많은데 길은 하나다. 모두 같은 길로 간다. 라마섬의 트래킹 코스를 걷든, 해변을 가든, 어린이 캠프를 가든 일단 하나의 길로 간다.  

너무 사람이 많아 부두 앞에 있는 라마섬 박물관에 잠깐 들렀는데 배에서 아직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을 피하긴 틀렸다. 하는 수 없이 대부분의 라마섬 방문객처럼 Yung Shue Wan에서 Sok Kwu Wan으로 가는 트래킹 코스를 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니 바로 작은 마을 Yung Shue Wan이 나온다. Yung Shue Wan은 꽤 괜찮다. 상점도 홍콩식인지 서양식인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나는데 음식점뿐 아니라 옷, 예술품, 공예품등 다양하다. 또한 좁은 골목의 집들은 아기자기하고 이쁘게 색칠을 했다. 그래서 마을과 골목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양인들도 많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Yung Shue Wan은 다문화 공동체의 중심지로 상당규모의 외국인 인구가 거주한다고 한다.  

길치인 나는 하나밖에 없는 길조차 잘못 들어서 덕분에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좁은 길과 낮은 담벼락, 현관 앞에 놓인 작은 화분들 속의 노랗고 빨간 꽃들과 오래된 낡은 자전거들이 오래전에 본 사진 같다. 골목의 작은 집들에는 내 눈높이 보다 살짝 위에 작은 창문 냈는데 안에서 티브이인지 라디오인지 소리가 들렸다. 어릴 때 살았던 대흥동 골목이 생각났다. 지금은 많이 개발되었겠지만 그때의 골목과 집들도 비슷했다. 좁은 골목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작은 창문 있는 집은 발꿈치만 살짝 들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창문 안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친구들과 점프를 뛰어보곤 했다.(아... 그 어릴 때란 초등학교도 가기 이전이라 이상한 의도는 없었다.)  

사진 출처: 홍콩 관광청

라마섬 트레킹을 시작하는 입구에는 홍싱예 해변이 있다. 제법 넓다. 트레킹을 하기 전 혹은 하고 나서 해수욕을 하고 집에 가면 좋을 듯싶다.  

해변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트래킹을 할 수 있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부모와 같이 온 어린이들이 많았는데 트래킹 코스 중간에 어린이 시설이 있어서 단체로 많이 온 듯하다. 많은 어린이들이 모여 있으니 한국에 있는 우리 딸, 아들 생각도 나고 귀여웠는데 나중에는 너무 시끄럽고 질서도 없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꼬맹이들이 소리도 지르고 싸우기도 하고 반대방향으로 뛰기도 하고 정신을 쏙 빼놓더니 어린이 시설이 지난 이후에야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다듬고 사람들과 같이 걷다 보니 대만의 환경 작가가 쓴 '우리가 몰랐던 홍콩의 4분의 3'에서 언급됐던 발전소 굴뚝이 보인다. 제법 크다. 그 책에서는 아름다운 라마섬에 흉물스러운 발전소를 지었다고 저주를 퍼부었는데 건설업에 종사하는 나로서는 '저 발전소 때문에 저기 밑에서 장사하고 사람들이 전기불도 켜고 지금 이 길도 만들고 한 거야. 이 무턱대고 우겨대는 환경단체들아'하는 생각도 했지만 보기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인간의 편의와 자연보전의 딜레마다.     

천천히 산에 오르는데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무슨 나무향인지 시원하면서도 상쾌하다. 백화점의 고급 향수 냄새보다 낫다. 길은 가파르지도 않고 적당히 땀도 나고 이 정도면 장시간도 너끈할 것 같다. 산길 중간중간에는 노점상이 있어 파인애플을 사 먹어 본다. 기다란 나무젓가락에 파인애플을 큼지막하게 잘라서 파는데 벤치에 앉아 홍콩사람들 틈에서 먹고 있자니 가족 생각이 났다. 시원하고 새콤달콤하니 우리 딸과 아들이 좋아하는 맛이다.  

주위에는 노인들도, 아이들도 많다. 서양인들도 제법 많다. 홍콩사람들이 주말 나들이로 좋아하는 장소답다. 도심 속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과는 다르다. 여기는 내가 몰랐던 또 다른 홍콩이다. 

또다시 길을 오르다 보니 노부부와 딸, 그리고 손녀로 보이는 가족이랑 가깝게 가게 되었다. 노부부는 연신 싸우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중간중간 큰소리로 투덜대고 할머니는 뭔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아버지의 말을 딱딱 끊으며 면박을 주는 듯하다. 딸은 연신 노부부를 돌아보며 인상을 쓰지만 아무 말도 않고 참는다. 손녀는 눈치 없이 얼굴을 찡그리며 자기의 불만을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사이에 끼워 놓는다.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여기 라마섬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다. 영어로 말한다 한들 내가 제대로 알아들을 리도 없겠지만. 또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 

할아버지가 

"내가 그러길래 안 온다고 했지. 다리 아프다잖아. 손녀딸도 오기 싫다는데 굳이 여기 왜 오는 거야?" 

할머니가 

"당신은 집에 있어봐야 TV만 보고 아무것도 안 하잖아. 오랜만에 딸이랑 손녀가 왔는데 아무거나 먹일 수 도 없고 하루종일 밥 차려야 하는데 당신은 뭐 불만이 많아?" 

손녀는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다리 아프단 말이야" 

이곳 라마섬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없지만 답답하진 않다.

어느덧 정상에 올랐고 내리막길이 보였다. 한국의 산은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평탄한 길이 반복되지만 대부분의 홍콩의 얕은 산은 오르막 이후 바로 내리막길로 끝난다. 내려가면 끝인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아주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내려갔다. 

가다 보니 집들이 하나둘 보이는데 집 앞에 밭에서 한 아저씨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반대편 집에서는 할머니가 밭의 풀을 베고 있었는데 왠지 여유로워 보였다. 섬의 분위기 때문일까? 분명 이 더운 날에 땡볕아래서 일하는 모습은 안쓰러워야 정상일 텐데 말이다.  

내려오는 길에 로소싱 해변을 둘러봤다. 홍싱예 해변과는 다르게 적막하다. 두세 팀의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고 나처럼 하이킹을 하다 들려서 사진을 찍는 젊은 남녀만 있다. 카페라도 있으면 해변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백사장외과 탈의실, 화장실 밖에 없으니 우두커니 벤치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도 없고 한적하니 그늘에서 책 좀 읽다가 더우면 물에 들어가고 나와서 맥주 한잔 먹으면 딱일 듯싶다. 발검음을 옮기니 금세 종착지인 Sok Kwu Wan에 도착했다. Yung Shue Wan과는 다르게 여기는 해산물 식당만 있다. 여느 홍콩 해변 식당처럼 가족들이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새우나 커다란 생선 요리의 해산물을 먹고 있는데 도저히 합석해서 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나마 스파게티를 파는 식당에서 아이스레몬차를 한잔 마시며 돌아가는 배를 기다렸다.  

왠지 좀 아쉬웠다. 맑은 공기와 멋진 전경과 제멋대로의 공상을 좀 더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일주일 내내 복잡한 시내에 있다가 배도 타고 산도 오르고 바닷가도 가니 몸은 힘들어도 살 것 같았다.   

 

P.S 

예전에는 나중에 더 나이 먹고 은퇴를 한다면 혼자 올레길을 걷는다거나 외국의 유명한 순례길을 걸으며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사색을 하면서 지친 마음과 정신을 달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혼자 홍콩의 산과 길을 걸으니 온갖 잡생각이 혼란스럽게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지난날 기억이 불쑥 떠 오르다가 쓸데없는 상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신세를 한탄하다가 아슬아슬했던 위기순간이 떠오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다못해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괴이한 드라마까지 만든다. 걷는 내내 생각이 이리저리 날뛰며 수다스럽게 중구난방 말을 걸어온다. 일일이 답하다간 병에 걸리겠다 싶다. 사색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방법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거대한 테마파크 마카오에 가면(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