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되었을까? 몇 개월이나 날씨가 흐리다 비오기를 반복한다. 뜨거운 햇빛보다 훨씬 낫다며 좋아하는 직원도 있지만 오랫동안 해를 못 봐서 그런지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늘을 보니 답답하다. 게다가 비를 핑계로 주말에 집 밖을 나가지를 않으니 기분이 더 처지는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TV 리모컨만 만지작 거리다 구글을 검색하니 Heritage of Mei Ho House가 있다. 게다가 적당히 걸어서 운동할 수 있는 거리다. '좋아! 진행시켜~' 하며 뻑적지근한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홍콩의 주택문화에 있어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53년 섹깁메이의 판자촌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중국에서 이주해 온 53,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내 앉았으니 엄청난 재난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홍콩에서 최초의 공공주택을 건설하여 저가의 임대료로 이재민을 수용했다 한다.
섹깁메이 화재는 이전에도 구룡공원 Heritage Discovery Center와 Hollywood Road Park 안내표지판에서도 봤다. 중국에서 밀려온 많은 난민들이 일시에 이재민으로 변한 재난이니 역사적으로도 큰 사건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여하튼 이 화재로 인해 공공주택이 처음 지어지기 시작됐다.
바로 그 첫 공공주택이 Heritage of Mei Ho House다. 현재는 유스호스텔로 운영되고 있고 작은 전시장이 있어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전시장에는 화재사건부터 건물을 짓고 당시 주민들의 삶에 대해 여러 형식으로 진열되어 있다.
초기에는 화장실과 빨래는 공용장소에서 하고 부엌이 없어 베란다에서 음식을 했다. 한 집에서 여러 가구가 생활을 하고 겨우 사람하나 누울 좁은 공간에서 칼잠을 잤다.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주거환경이 개선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그곳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가정을 꾸려 사람들이 살았다. 전시물과 함께 그 당시 생활을 상상해 보니 사람들의 생존력은 참 대단하다 느꼈다.
또한, 건물 옥상에 학교를 만들어 가난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르치려는 사람과 배우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했고 기부금등을 받아 유지했는데 그마저도 포기하고 돈 벌러 일선으로 학업을 못 마친 학생들도 많았다 한다.
작은 전시관으로 다 보는데 1시간도 안 걸리지만 이곳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마음이 짠해진다.
6.25 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더 처참했겠지? 전쟁과 비교가 과하다면 빈민가 판자촌과 비슷할까? 영화 <내 친구 정일우>를 보면 신부님이 청계천 판자촌에서 주민들과 힘을 합쳐 집단 이주마을을 건설하여 이주하는 과정이 나온다. 판자촌이라는 단어만 알았지 그들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놀랐다. 불과 몇 십 년 전인데 저렇게 힘들게 살았단 말인가? 그들의 빈곤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걸까?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외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Heritage of Mei Ho House의 전시관은 홍콩의 과거뿐 아니라 한국의 과거의 모습까지 생각하게 한다. 게다가 규모가 크지 않고 설명도 잘 되어 부담이 없다.
마지막으로 전시관 출구쯤인가에 안내문이 있는데 마지막 문구에 '나은 미래를 위한 그들의 인내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라는 문장이 무척 와닿았다.
P.S 삼수이포 근처에 위치해 있는데 삼수이포에서 유명한 백종원 맛집 갔다가 전자상가 갔다가 들르면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