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내가 어렸을 때도 매염방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홍콩 여배우라 얼굴과 이름은 잘 알았지만 어느 영화에 나왔는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게 홍콩 여자 영화배우란 왕조현, 장만옥, 임청하, 양자경 등 주연급 배우 정도고 매염방은 조연급으로 기억되는가 보다.
사실 사망한 지 20년이 되었다는 것도 최근에 장국영에 대해 검색해 보다 알게 되었다. 이후 옹핑에 구경 갔다가 티안 탄 부처상 밑에 있는 그녀의 영정사진과 위패를 우연히 보고 여기 '여기 매염방이 있네' 하고 무심히 지나치기도 했다. 또한,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에 있는 동상이 그녀라는 것도 이번에야 알았다.
매염방의 위패와 팬들이 가져다 놓은 사진, 꽃
얼마 전 샤틴의 '홍콩 문화 박물관'을 갔다가 그녀의 사망 20주년 특별전을 봤
작년에 같은 장소에서 장국영 사망 20주년 특별전을 봤는데 매염방이 장국영 사망 후 8개월 뒤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연이어 두 명의 스타들의 특별전을 보게 된 것이다. 매염방은 생전에 장국영과 절친으로 지냈으며 장국영이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바로 매염방이었다고 하니 둘은 죽어서도 인인이 깊다.
이번에도 특별전의 주인공이 매염방인 줄 몰랐는데 포스터가 'Timeless Diva Anita Mui'라는 제목과 함께 어느 패션모델 같은 여성이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진이길래 패션 전시회인가 했다가 입구에 도착해서야 매염방인 줄 알았다.
장국영 특별전과 비슷하게 한편에는 그녀의 생전 영상이 나오고 그녀가 입었던 옷과 장신구들, 트로피, 출연했던 영화 포스터와 음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내표지판과 인터넷을 검색해 그녀의 일대기를 천천히 읽어보니 그녀는 어린 시절 음악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여 바로 스타덤에 올라 이후 음악과 영화계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홍콩 대중문화를 이끌었다 한다. 특히 그녀는 중성적인 음성, 파격적인 퍼포머스와 의상으로 기존의 홍콩 음악계를 흔들었으며 홍콩 뿐 아니라 '아시아의 마돈나'로 불리우며 아시아 전역에서 홍콩문화의 유행을 일으켰다. 이뿐 아니라 평소 주변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의리 있는 행동으로 큰언니로 불렸으며, 후배가수를 위해 가요제 수상을 마다하여 신인에게 길을 터주고, 다양한 자선활동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중국 천안문 사태 때 중국의 주요 운동권인사들의 홍콩도피를 돕고 중국정부에 대해 항의하는 홍콩의 영향력 있는 대중문화 예술가였다.
아~ 나는 여지껏 이렇게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을 왜 몰랐을까 싶다.
전시장 한켠에는 매염방의 콘서트 영상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포스터에서 처럼 화려한 하얀 웨딩드레스와 모자를 쓴 매염방이 관객들과 이야기하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때 매염방은 말라서 광대뼈랑 입이 조금 돌출되어 힘없이 나약해 보이다가도, 또 달리 보면 깡다구가 끝내주는 강인한 여성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가만히 그 영상을 보고 있자니 강인함을 넘어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매염방이 결혼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 후 노래를 부르는데 굵고 낮으며 힘 있는 음성에 낯익은 멜로디다. 그 콘서트는 그녀가 죽기 한 달 전에 열린 공연이었고 마지막 노래였다. 그녀의 언니도 암으로 몇 년 전 세상을 떠나보내고 본인도 같은 병에 걸려 죽을 예감하고 진통제를 맞아가며 부른 노래다. 평소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그녀가 숱한 남성들과 스캔들만 남기다가 죽기 전 자신을 위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마지막으로 수많은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담담하면서도 힘 있게 노래를 부르다 끝부분에 이르자 기다란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무대에 중앙에 놓인 높은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올라간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한치의 떨림도 없이 굵고 강하게 이어지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야 계단의 끝에 도달한다. 그리고 계단 맨 위의 문이 열리자 마침내 그녀는 멈춰서 관객을 돌아보며 힘차게 외친다.
"Bye, Bye"
한자어로 "再見, 다시 보자"
관객들의 환호를 뒤로 하고 그녀는 문뒤로 사라지고 문이 닫힌다.
그때 그녀의 나이 마흔 살이었고 한 달 뒤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자기의 마지막 콘서트도, 삶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끝이 났다. 진부하게 느껴지는 연출조차 그녀의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녀에게서 아파하거나, 힘들어하거나, 슬퍼하는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기 생의 마지막 콘서트의 마지막 노래를 흔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마무리했다. 그녀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객들도 그녀의 마지막 무대에 소리를 지르며 환호성을 친다. 마치 그녀가 아프다는 걸 모르는 척이라도 하듯.
출처: https://min.news/en/
아~ 매염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오랫동안 '아시아의 마돈나'로 불려졌다는데 그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