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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게바라 May 19. 202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1): 홍콩 경극 관람기

오래된 대중문화의 추억

홍콩에 오고 나서 줄 곧 홍콩의 경극을 보고 싶었다. 경극이라는 장르를 알게 된 건  영화 '패왕별희'를 보고 나서 일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극에 대한 이미지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연주 속에 그로테스크 한 분장을 한 등장인물들이 비현현실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연극이었다. 혹은 한때 인기 있었지만 오래되어 쇠퇴한 중국의 대중문화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홍콩에 와서 전통문화체험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경극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숙소와 멀지 않은 곳에 홍콩 경극을 공연하는 시츄센터가 있어 오다가다 건물을 들러보니 경극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시츄센터는 2018년도에 개관한 지은 지 얼마 안 된 신식 건물인데 외관이 마치 무대의 막이 펼쳐지는 듯한 모습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마치 무대와 관중석을 연상하듯 멋있게 만들어졌는데 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들러 볼 만했다.

'그래! 돈이 얼마나 들지 몰라도 경극을 꼭 보자!' 하는 마음으로 같이 갈 사람을 구하려 홍콩에 오래 살았던 동료들에게  

"경극 보러 가실래요?"

하고 물어보니 모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다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엄청 재미없을 거 같다며 그걸 왜 보려고 하는지 오히려 되물었다.  

막상 혼자 가려니 뻘쭘할 거 같아 주저하고 있는데 1월에 새로 홍콩에 부임한 동료가 있어 슬쩍 미끼를 던지니 덥석 물었다.

"난 이번 설 연휴에 경극 보러 갈 거야~"

홍콩이 낯선 그 친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러고는 오히려 조심스레 되물었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되고 말고~"

대답하며 다음날 무려 일인당 420불이나 주고 Xiqu Center 대공연장 앞자리로 두 좌석으로 예약했다.  

제목은 'The Emperor'로 왕자가 황제가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몰래 궁궐밖으로 공연단을 찾아 나섰다가 강도에게 구타당해 기억 상실증에 걸렸는데 마침 공연단에 의해 구출되어 일원으로 지내다 다시 우여곡절 끝에 황제가 되는 코미디극이다.

Xiqu Center 5주년 기념 공연이며 설연휴라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았고 가끔 서양인도 보였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재미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스토리가 단순하고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기도 하고 공연장 상부에 영어자막이 나와서 극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화려한 의상과 쉴 틈 없이 계속되는 연주와 노래가 3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앞자리라 배우들의 얼굴과 연기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다만 자막이 가끔 안 나오는 부분에서 사람들이 웃었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재치 있는 애드리브이겠거니 싶었다.

특이한 것은 관람객들의 호응이 생각보다 커서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데 격식이 없어 보여 좋았다.

영화 패왕별희에서 보면 관람객들은 배우의 연기에 웃고 울으며 호응이 대단했는데 과장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관람이 끝나고 조심스레 동료에게 어땠냐고 물어보니 내 덕분에 좋은 거 봤다 한다.

홍콩 관광지를 생각하면 다들 맛집, 쇼핑, 야경, 트램등 몇 가지 아이템만 떠 올린다.

게다가 이미 한 번쯤은 와 본 사람들도 많을 터이니 홍콩 관광정보는 다 거기서 거기다. 심지어 굳이 볼거리 없는 홍콩을 왜 가냐 하는 사람도 주위에 많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마찬가지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생각을 접하고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홍콩은 같은 동양문화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짧은 여행기간 뛰어다니며 사진 찍고 인스타 올릴 시간도 부족하겠지만 좀 더 다양한 문화체험을 한다면 좀 더 홍콩을 좋아하지 않을까?  

샤틴의 문화 박물관에 홍콩 경극에 대한 전시가 잘 되어 있는데 경극이 홍콩 근대 대중문화에 주류였음을 알 수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건너와 부대끼며 없이 살던 사람들에게 경극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해 주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번에 3, 40년대 가난한 서민이 오래간만에 경극을 보러 온 홍콩인으로 빙의해서 경극을 보니 유쾌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을 보니 모두 만족한 얼굴들이다. 근심, 걱정을 코미디 경극을 보면서 툭~하니 내려놓고 온 기분이 아닐까?  

이번 공연은 오래 묵힌 숙제를 해결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설연휴 재미있고 생소한 경극을 직관한 행복한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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