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이상한 고집이 생겼다. 무조건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말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 상황은 최악이었다.
우리 집은 점차 망해갔다.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망해갔다. 방 3개짜리 집에서, 방 2개짜리로, 전세에서 월세로, 큰 단층집에서 작은 아파트로 그리고 더 작은 셋방살이로. 그리고는 마침내 집이 없어졌다!
형제자매들은 독립이란 명분하에 각자의 삶을 찾아 객지로 떠났고, 엄마는 요양원으로, 아빠는 어딘지 모르는 자기만의 보금자리로 가 버렸다. 그렇게 나는 20년 넘게 남들이 말하는 '본가'가 없는 채로 살고 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의식하지 못한 채, '최고'에 집착하며 살았다.
서울, SKY, 대기업
학원은 바라지도 못했고, 고3인 나에게 학습지를 시켜주니 마니 하는 문제로 부모님이 싸우시기도 했다. 버스비가 없어 공립 도서관에 가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지원받은 소액의 장학금도 고스란히 엄마 손으로 들어가곤 했다. 각종 수납문제로 학교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생활은 덤이었고 말이다.
고3 어느 날, 행정실로 불려 간 나는 보충 수업비를 내지 않은 문제로 추궁을 당했는데, 왜 돈을 내지 않는지, 언제 낼건지 뭐 이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돈이 없어서요"
나는 바닥을 쳐다보며 세상 건조하게 말했다.
"그럼 보충수업을 듣지 마"
행정실 선생님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진리를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대꾸할 어떤 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현실은 더할 수 없이 가진 게 없었지만, 무슨 근거인지 나는 내가 'SKY'에 갈 수 있을 거라고,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 진정한 인생은 그곳에 가야만 비로소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람은 현실이 지옥이면 맹목적이 되나 보다.
가진 게 없어 목적만 쥐고 있던 나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SKY에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