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내가 이해되지도, 감당되지도 않는, 그런 총체적 난국인 순간이 온다. 심리상담사인 나도 내가 참 버겁고, 당혹스러운 순간들이 많은데, 그중 내 인생을 휘젓고 어지럽게 만드는 나의 특성 중 하나는 단연코 '충동성'이다.
충동성, 달리 표현하면 기분파라는 뜻인데, 좋게 말하면 거침없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요, 나쁘게 말하면 지 꼴리는 대로 한다는 거다. 남들은 심사숙고하느라 여전히 고민중일 때, 나는 벌써 신발 신고 뛰어 나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게 조절이 안된다면? 그러지 말아야 할 순간에도 내키는 대로 의사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말 그대로 대환장 파티다. 헛발질하는 본인도 꽤 아프지만, 보는 주변인들도 불안 불안하다.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도전해 가지만, 성공하면 의지의 한국인이요, 실패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 없고 철없는 사람쯤 되시겠다.
나는 얼핏 보자면 비교적 성공한 의지의 한국인이다. 가진 거 없는 집안에서 그냥저냥 다녀도 되는 국립대를 휴학도 아닌 자퇴를 해버리고 수능을 다시 쳐 SKY에 진학을 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적당한데 골라 취직하면 될 것을 기어코 학교 근처 자취방에 남아 알바까지 해가면서 취업준비한 끝에 S전자에 취직을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꺾이지 않는 불굴의 전사 같은 느낌이지만, 나는 애초에 뭔가를 오래 붙잡고 있는 성향이 아니었다. 새로운 것에 관심은 많지만, 그만큼 싫증도 잘 내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였다.
초등 저학년 때까지는 그래도 못 살지는 않았기 때문에 학원을 이것저것 다녔었는데, 끈질기게 다닌 게 없었다. 그나마 피아노는 체르니 100번까지는 한 것 같은데, 그렇게 되기까지 피아노 학원을 3-4군데는 옮겨 다녔던 것 같다. 오죽하면 당시 나의 보호자이자 훈육을 담당했던(?) 큰 언니에게 한 군데를 오래 다닐게 아니면 아예 모든 학원을 끊어버리겠다는 엄포까지 들었을까. 뭐, 그 뒤로는 집이 가난해져서 자동으로 모든 학원이 끊기게 되지만 말이다.
호기심과 호기로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성향은 자주 바꿔버렸던 학원들과 함께 십여 년간 저 깊은 수면아래로 가라앉아만 갔다. 고를 수 있는 게 없어 그나마 주어진 한 가지만을 집요하게 좇는 사람이 되어버린 나는, 내 안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숨을 죽이고 있던 나의 성향은, 성공적인 취업과 안정된 생활이 충족되자, 다시 한번 수면 위로 그 얼굴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