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예전 다니던 대학에 산책 왔다. 추억이 새록새록. 학교는 변한 게 없다. 도시 곳곳은 옛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리기 바쁜데, 학교는 변함이 없다. 변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모두 변하면 추억은 어디로 갈까. 변하지 않는 곳이 있어 다행이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오르는 오르막도 그대로였고 드리워진 그늘도 그대로였다. 나의 느낌인지 벚꽃나무는 더 큰 아름드리고 굵어졌다. 그만큼 그늘도 더 야무졌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하는데, 햇빛 틈 없는 그늘이 그나마 이마의 땀을 식혀줬다.
내가 다녔던 단과대학 옆 그늘진 벤치가 보였다. 시골 소년이 도시로 올라와 수업을 빼먹고 홀로 앉아 눈물 훌쩍였던 그 벤치. 정확이 몇 번째 벤치였는지는 가물가물한데, 시골에서 유학온 갓 스무 살 된 소년은 향수병으로 울었다. 그리곤 훌훌 털고 일어나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하려고 머리 싸매 공부한다고 들락거렸던 건물도 그대로였고, 방학 때면 출퇴근하듯 가방 메고 왔다 갔다 했던 중앙도서관도 그대로 서 있었다. 다만, 그 사이 한 층이 더 올라갔다. 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도서관을 생각하니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졸업생인데 들어가 볼 수 있나요?"
"특별출입증을 받으면 됩니다. 책 안 빌리면 1만 5천 원, 책 빌리면 5만 원입니다."
"아, 네. 그렇군요."
대답하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졸업한 후 회사를 10개월 만에 그만두고 졸업생으로 출입증 바코드를 받아놨던, 꼬깃꼬깃한 옛 학생증을 출입구에 괜스레 대봤지만, 출입구의 울림은 없었다. 학교는 변한 게 없었지만, 출입 통제는 강화됐나 보다. 관리를 위해 이해는 가지만, 졸업생이라고 돈을 받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을까.
한 바퀴 더 둘러볼 심산으로, 시비에도 가봤다. 시비도 그대로였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시비 뒤편에 새겨져 있었다.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본다. 님의 침묵. 한용운 선생님은 어떤 심정으로 시를 썼을까.
입학한 지 25년, 졸업한 지는 16년. 시간이 참 잘 흘렀다. 그새 나의 머리칼에도 흰머리가 절반 정도로 늘었다. 스물 청년일 때, 살고자 했던 삶을 잘 살고 있을까.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어우러져,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