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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파니스 Aug 08. 2024

맨발걷기 그리고 폐지수거

어느날 아침에 본 이야기

입추(立秋)다.

절기만 그러할 뿐 더위는 여전하다.

햇살은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고,

공기는 불가마 속처럼 뜨겁다.  


한 달 전쯤 집 앞 공원에 흙 산책로가 생겼다.

타원형으로 폭 2미터, 길이 100 미터 남짓이다.

맨발걷기가  건강에 좋다고 입소문이 나서인지,

아침저녁이면 이 좁은 공간에 맨발이 꽉 찬다.


매일 아침 이곳에 들른다.

30분쯤 맨발로 걷는다. 

맨발에 와닿는 감촉이 아주 좋아서다. 

요즘 같은 무더운 아침에 이만한 것도 없고. 


길 건너 맞은편에 과일가게가 자리하고 있다.

가게 앞 가로수 밑에는 빈 박스가 놓여있고.

때론 많고 때론 적고. 

이걸로 어제 장사를 가늠하곤 한다.


내가 맨발로 걷는 사이 손수레가 오고, 

자전거가 가기도 한다. 

그리고 박스는 치워지고.


여느 날의 평온한 아침 풍경이다. 


오늘 아침 7시 현재 온도 28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엔 햇살이 눈부시다.


무더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일상의 평온함이 깨졌다.

리어카를 끌고 온 할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온 할머니로 인해.


열 개 남짓의 박스를 서로 가져가기 위한 다툼이었다. 

고성이 오가고

박스를 밀고 당기고

급기야

삿대질을 해댔고,

서로 밀치고 버텼다.

운동하는 사람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끌렸다.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지 모른다.

다만 종일 주워도 만 원을 채우기 힘들다는 소문은 들었다.

저 박스를 다 가져간다고 해도 절대 1천 원을 넘을 리 없다. 


나는 어젯밤 더위에 지쳐 6천 원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고,

맨발로 걷는 틈에 끼여 땀 흘리며 걷는다. 

길 건너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1천 원도 안 되는 돈을 위해

악다구니를 쓰며 땀을 흘리고 있다.


오늘 아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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