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무섭지 않았다
[밤 9시 글쓰기 20] 24.10.27. 고명환 고전이답했다 이금희
기어이 비가 내렸다.
이러려고 구름이 어젯밤부터 그리 몰려왔었나 보다.
허리가 무거워 하얗게 지새운 밤이 길었던 건
날씨 탓이었나 보다.
작년, 아니 재작년쯤이다.
블로그 이웃님이 나이 오십이 넘으면,
재채기도 조심하라고 했었다.
밥통 전기 플러그 뽑다가도 허리가 삐끗하는 때라면서.
그냥 웃자고 한 얘기인 줄 알았었다.
근래 비가 자주 오락거리더니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어제 오후 창문 유리에 뽁뽁이를 붙였다.
쪼그려 앉아 재단하고 자르고,
의자에 몇 번 오르락내리락하고,
몸을 좀 썼다.
아침,
이불 밖이 문득 무서웠다.
차가운 기운이 문지방을 넘어왔고,
허리가 묵직하고 무릎은 시큰했다.
어제 몸을 혹사했나 의심했지만,
곧 알았다.
비 때문이란 걸.
중년의 비극이란 게 따로 없다.
운동을 해도 아프고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또 아프다.
게다가 날씨 눈치도 봐야 한다.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유튜브 여행을 시작했다.
페이스북 친구가 추천한 음악이 첫 순서였다.
왕가위 <일대종사> 오에스티(OST)를 검색어로 넣었다.
다음부터는 알고리즘에 맡겼다.
이게 귀찮기도 하지만 때로는 유용한 면도 있다.
잘 활용하면 뜻하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일주일엔 한 번쯤은 알고리즘 흐름에 적극 탑승하는 편이다.
내 관심은 이런 것이냐고 묻는 듯,
영화를 말해주거나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거짓말인지 박애주의 실천인지 모호한 주식 추천 영상도 나왔다.
이금희 '마이금희'까지 왔다.
고명환 작가 <고전이 답했다> 이야기였다.
작가가 34세에 교통사고가 났다.
의사도 포기했다.
염라대왕 최종면접 직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
고전을 읽으며 인생이 변했다.
책에 그 깨달음을 담았다.
개그맨, 요식업 사장, 작가, 배우, 강사 등 하는 일이 화려했다.
출판 일까지 1000일 동안,
매일 긍정 확언을 하는 유튜브 영상도 올렸다.
대단한 열정이었다.
고 작가 입담이 풍성했고,
이 아나운서 진행도 감칠맛 났다.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불 밖이 무섭다고,
허리가 무겁다고
싸매고 누워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으로 광주종합버스터미널(유.스퀘어)로 갔다.
일요일 오후, 영풍서점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예전에 버스를 기다릴 때 몇 번 와보긴 했지만,
광주에 온 후 단지 책을 목적으로 방문한 건 처음이다.
평소 모습인지, 한강 작가 영향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많았다.
도서관은 공짜이고, 인터넷은 편리하여.
근래 큰 서점 나들이가 적었다.
그래서 낯선 여행지와 같은 발견의 즐거움을 잊고 지냈다.
도서관은 옛 자료를 찾기 쉽지만 요즘 경향을 알 수 없고,
인터넷은 내가 아는 것만 주문하니 시야가 좁아진다.
동네책방은 주인 취향에 맞추는 편이니, 논외로 치고.
인기 도서 전시대에 시작하여 신간 전시대까지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비는 계속 내렸다.
허리는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