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감 능력은 몇 점
[밤 9시 글쓰기 24] 24.11.01. 공감능력 반려견 고속버스
어제 마주친 장면 셋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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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30분.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중앙고속버스가
정안휴게소에 멈추었다.
15분간 쉬어 가겠습니다.
잠시 맑은 공기를 쐬고 곧 돌아왔다.
벌써 용무를 마쳤는지 승객이 제법 많았다.
읽던 책을 다시 펼쳤다.
이 버스가 아닌가 보네.
곁에서 당황스러운 혼잣말이 속삭이듯 들렸다.
고개를 들어 스치듯 보았다.
보라색 상의에 키가 작고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소녀같이 귀엽고 아담한 할머니였다.
그뿐, 책으로 눈을 돌렸다.
할머니, 다른 중앙고속인데 잘못 오셨나 봐요.
어디서 몇 시차 타셨어요.
출입구 밖인 듯 멀리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후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갔다.
네 번째 차 건너 중앙고속버스에
그 할머니가 오르고, 안내했던 아주머니는 되돌아오고 있었다.
늦은 50대쯤 되었을까.
흰색과 검은색 체크무늬 상의에 검은색 바지를 입었다.
전체적으로 수수했다.
당연한 할 일을 했다는 듯 버스에 올랐다.
그 당연한 걸 왜 난 못했지?
혹시 내 공감 능력 어딘가가 고장난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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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 40분
고속버스터미널역.
목적지가 9호선 신논현역이었다.
9호선 타는 곳으로 급히 가는데,
선한 인상의 할머니가 앞을 막는다.
하고많은 서울 사람 다 놔두고 하필이면
광주에서 방금 올라온 시골 사람을 붙들고.
서울대역을 가야 하는데, 잘못타서 ...
왜 그랬는지,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런 상황이었다.
차를 잘못 타서 천 원만 주면 어쩌고, 하였던,
끝까지 듣지 않고, 딱딱하게 물었다.
그래서요?
이어지는 말을 듣다 보니 오해였다.
정말, 길을 잃었다.
서울지하철이 필요에 따라 신설되다 보니,
환승 거리가 멀고 불편하다.
그것도 하필이면,
3호선과 7호선과 9호선이 만나고,
고속버스 터미널과 신세계 백화점에
지하상가까지 얽힌 복잡한 동네에서.
3호선을 타고 교대역에서 갈아타라고 했지만,
여전히 난감한 표정이었다.
약속 시간까지 빠듯했지만,
안쓰러운 눈빛을 저버리지 못했다.
선입견으로 지레짐작했던 잘못 때문이라도,
어쩌면 정안휴게소 할머니 생각이 잊히지 않아서,
3호선 승차 위치까지 같이 갔다.
약속장소가 강남역과 신논현역 중간지점이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교대역까지 갈 걸 그랬나,
돌아오면서도 못내 찜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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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0분.
청담공원.
사진으로는 봤었다.
이름은 루이, 품종은 포메라니안.
7살이라고 했으니 사람으로 치면 40대 중년이다.
누나 친구의 반려견이다.
루이 교통사고 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밖으로 몰래 나갔다.
절뚝거리며 돌아왔다.
중년 여인이 뒤따라왔다.
죄송해요.
골목길에서 놀고 있던 애를 치었어요.
거듭 죄송하다며,
병원까지 따라와 치료비를 지급하고 갔다.
연락처를 받아 놓았으니,
그 치료비를 돌려주어야겠다고 했다.
고마웠다는 말을 몇 번 반복했다.
만약 그 운전자가 나였다면,
개줄로 묶어 다녀야 한다는 규정을 앞세우며,
그냥 가든,
내가 피해자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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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누군가가 나를 시험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