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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파니스 Oct 31. 2024

시월의 마지막 밤에

[밤 9시 글쓰기] 24.10.31. 임플란트 치과 쌀국수

1.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첫째가 딱 보면 아는 사람이다.

길 가다가 노란 덩어리가 있으면 굳이 맛보지 않아도 무언지 바로 알아챈다.

쓸데없이 번거롭지 않고 지혜롭다.​


둘째가 보는 것만으로는 확신이 없어 겪어봐야만 하는 사람이다.

확신이 부족하여 꼭 찍어 맛을 본 연후라야

노란 덩어리 정체를 놓고 고민하지 않는다.

자기 발등을 찍는 사람이 대개 여기에 속하며,

헛똑똑이일 확률이 높다.


셋째는 겪어보고도 모르는 사람이다.

찍어 맛을 볼 때는 알지만 곧 잊어버린다.

노란 덩어리를 볼 때마다 맛을 본다.

손발이 고생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의외로 낙천적이다.​


2.


인간 퇴화의 징조가 여럿인데,

하나만 꼽으라면 치아가 아닐까 싶다.

오십여 년 쓰고 나면 하나 둘 곁을 떠나간다.

100세 시대에 이런 어이없는 사태에 격분도 하지만

믿을 만한 소식통들 말을 들어보면 공감이 간다.


팔순 구순 잔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최근의 일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환갑잔치가 대세였다.

육십 년 만 살아도 호상(好喪)이라고 했다.

치아도 여기에 맞추어 진화했다고 여긴다면

50년 시용 기한은 지극히 정상인 셈이다.


3.

어금니 하나가 빠지니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그쪽 볼이 꺼져 얼굴이 틀어져 보이고,

종종 볼살을 깨물어 며칠씩 통증으로 고생하고,

씹는 게 부실하여 위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임플란트 시술을 받기로 했다.​

최소한 10년은 쓴다고 하니,

신경이 쓰였다.


인터넷에 물어도 보고

옆 사람에게 자문도 구하고

발품 팔며 치과도 찾아갔다.


정보가 쌓이면서 의문도 커갔다.​

같은 제품으로

같은 시술법을 쓰며

같은 형태의 사후관리인데

비용만큼은 같지 않았다.


60만 원이니 100만 원이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수치였다.

어떻게든 추가되는 상악동 거상술이라고 불리는 뼈이식 비용이 도깨비방망이였다. ​


임플란트 시술 비용을 낮게 부르는 곳은 뼈이식 비용이 높았고,

임플란트 시술 비용을 높게 부르는 곳은 뼈이식 비용이 낮았다.

합해놓고 보면 얼추 비슷했다.

임플란트 비용을 높게 부르는 쪽이 더 양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4.


신박한 광고가 떴다.

임플란트 시술 비용 35만 원.

그 가격 옆에서 호감 가는 연예인이 미소를 지어주니

자꾸 눈에 밟혔다.

본점 서울과 지점 부산으로 전화를 했다.

광고와 같다고 높은 톤으로 맑게 답했다.


모은 정보와 몇 년간 가격 추이를 보면

불가능한 가격이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함정이 있는 가격이라고 단정하고 잊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뿐,​

확인해 보고 싶은 유혹은 떠나지 않았다.


급기야 서울 본점을 방문했다.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들추어본 후

견적을 내놓았다.


임플란트 시술 비용은 변함없었다.

사용하는 재료도 다른 치과와 같았다.​

다만, 뼈이식 비용이 고무줄이었다.

전화 상담 때 했던 금액은 끝내 함구했다.

이것 보태고 저것 다듬으니​

전체 가격이 다른 곳과 별반 차이가 없어졌다.

5.

반 년 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가을이 깊어가는 서울 하늘은 푸르렀고

공기는 투명하고 시원했다.


누나와 누나 친구와 그 친구의 뱐려견 루이와

청담공원을 산책했다.

공원이 건네다 보이는 베트남 식당에서

쌀국수와 반미 바게트와 닭 가슴살 볶음밥을 먹었다.


서울이 시월의 마지막 밤을 밝힐 때,

광주 오는 버스에 올랐다.


청담공원 이야기가 필요한 건

위안 때문이다.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는 천성 때문이든지,

의문이 들면 확인해 보는 직업병 탓이든지,

뭐든 꼭 찍어 맛을 봐야 아는 유형이든지.


요란을 떤 결과는 단순 명료했다.

가장 좋은 치과 의원은 집 앞에 있다.


​하지만 이 말만 하기에는 뭔가 지질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 굳이 쌀국수까지 들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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