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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파니스 Oct 30. 2024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 수 없는 맛

[밤 9시 글쓰기 22] 24.10.30. 미식가 맛집 밥상 무협 요리


무협 작가 나한이 <황금백수>에서 

나이 사십이 다 되어 결혼하는 친구에게

남편론을 펼쳤다.

남편이 아내에게 반드시, 꼭,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의무 세 가지가 있다면서. 


가장 중요하다는 첫 번째 의무는 밥상을 대하는 자세였다.

아내가 부르기 전에 때가 되면 밥상 앞에 앉아라.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맛본다는 듯이,

상에 오른 음식은 차별 없이 볼이 미어지도록 먹어야 한다.

과식이라고 생각되더라도 배가 볼록하도록 먹고 또 먹어야 한다.

토하든가 소화제를 먹는 한이 있더라도.


미식가(美食家)라고 자랑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음식에 대하여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란 의미도 있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그런데, 미식가 아닌 사람도 있을까.


개를 키운 적이 있었다.

제 입에 맞지 않으면 절대 먹지 않았다.

밥그릇에 여러 가지를 섞어 주기도 했다.

신기에 가까운 혀 놀림으로 기가 막히게 골라냈다.  


아기도 우습게 볼 일 아니다.

그 어린 것이 뭘 아는지 제 입에 맞는 것만 받아들인다.

몸에 좋은 거라고 먹이고 싶어 입에 넣어주어도,

제 입에 맞지 않으면 뱉어낸다.


어쩌면 입에 맞는 것, 맛있는 것을 찾는 것은 본능이 아닐까 싶다. 

내 과문(寡聞)하여 세상사 이치를 깨닫지 못했지만,

살펴본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전부 입에 맞는 것만 먹었다.

미식은 본능에 충실한 행동처럼 여겨졌다. 


꼬부랑 할머니와 꼿꼿한 할아버지 부부가 이웃이다.

때때로 할머니 말벗이 되고, 

반찬을 받고 빵을 주기도,

부침개를 받아 들고 고구마를 건네기도 한다.

오늘, 김치 한 통을 받았다.

김치 담는 일도 힘들어 시장에서 사 왔는데,

영감이, 파는 김치는 맛이 없다며, 담아 먹어야 한다고,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저녁에 그 김치로 밥을 두 그릇 먹었다.

입맛에 대해 미식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은 이성이라는 게 있어서 본능을 이겨낼 수 있어

동물과 구분된다고 믿는다.

먹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맛있는 것, 입에 맞는 것만 먹고 살 수 있다면

삶이 거품처럼 들뜨고 목화꽃처럼 풍성해지련만.

집에서 먹을 때,

누군가 날 위해서 만들어 줄 때, 

설사 외식을 시켜 주더라도,

언제나 본능을 죽이고 이성을 앞세운다. 

그리곤 음식 등급을 넷으로 구분한다.


맛있다.

아주 맛있다.

하마터면 기절할 뻔한 맛이다.

이보다 더 좋은 건 있을 수 없는 맛이다. 


상대가 아부성 발언이라고 받아들일지라도, 

대개 네 번째 등급을 부여한다. 

 

때로, 본능에 충실하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다.

나도 당당하게 미식가라고 주장하고 싶은.

그럴 땐, 둘 중 하나를 한다.

비용과 거리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맛집을 찾든지,

직접 만든다. 


먹고 사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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