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쿰파니스 Apr 28. 2024

불타는 금요일

240419. 감사 일기 6.

그제도 어제도 해는 동(東)에서 떠올라 서(西)로 가라앉았다.

오늘도 어김없었다.


하지만 햇살은 달랐다.

예뻤다.

고른치아 드러내고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미소 짓는 문득 마주친 소녀처럼, 

아주 예뻤다.

가로수는 꽃다발 같았고.


닿는 눈길마다 아름다움이 지천으로 널렸다.

금요일이어서 그렇다.

얼마 만에 만나는 놀토인가.


사람은 이야기로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금요일은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날이다.

불탄다는 수식어가 아주 어울린다.

(불은 여전히 토요일에만 탄다고 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다.)


"친구를 만나 영화를 봐야지.

도서관에 들러 미뤄 놓았던 책을 실컷 봐야지.

멋진 카페에서 커피를 우아하게 마실 거야.

...... ."


이루어지든 바람으로 끝나든 관계없다.

어쩌다 하나 이루어지면 기억으로 남고 소중한 추억이 된다.


하지만 날이 날이다 보니 마냥 즐거워하기에는 죄송하다.

오늘은 64주년 4·19혁명 기념일이고,

내일은 44회 장애인의 날이어서 그렇다.

둘 다 법정 기념일이다.

1. 덕분입니다.


4·19혁명은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이다.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

국부라는 분이 하와이로 갔다.


발단은 3·15 부정선거라고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무능과 부정 등으로 폭발 직전이었다.

3월 15일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마산에서 있었다.

그때 고등학생 김주열이 실종되었다.

4월 11일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죽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2차 시위가 일어났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3천여 명이 국회까지 진출하고 돌아가던 중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4월 19일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 학생이 총궐기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총칼로 진압하였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4월 25일 서울 시내 교수 300여 명이 시국선언을 하였다.

4월 26일 더욱 완강한 투쟁에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


영화 <건국 전쟁>은

이승만 정부가 실시한 교육으로 시민이 각성하여 일어났다고 자랑했다.

정당성을 설명하려 했겠지만 가르침을 준 그 정권을 몰락시키다니 아이러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립4·19민주묘지를 조조참배 했다고 한다.

아침 8시면 공무원 업무 시작 전인데,

이 정도면 건설현장 일정 수준인데,

힘든 이를 이해하시려고 낮은 데로 임하시는 것 같은 모습이 보기에 참 좋다.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2. 장애인의 날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고 한다.

1972년부터 민간단체에서 '재활의 날'을 개회해 왔었다.

1981년 국가에서 '장애인의 날'로 지정하였다.


4월 20일로 한 사연은 이렇다.

'4월이 1년 중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서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부각시킬 수 있다.

20일은 다수의 기념일과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다.'


퇴근하면서 종로에서 대학로 방향으로 향하는 행렬을 만났다.

(사)장애인부모연대였다.

마이크를 들고 선창하는 차량이 앞서고 전국 회원들이 각자의 깃발을 들고 차로에서 행진을 했다.

양옆으로 보호구를 착용한 경찰이 호위하듯 나란히 걸었다.

인도에는 그보다 많은 수의 경찰이 무리 지어 이동했다.

경찰의 수가 배는 많아 보였다.


장애인의 날이란 게,

국민이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뜻깊은 행사에 혹시나 다친 사람이라도 나올까 봐 그리 호위를 하는 것이리라.


지나는 길이라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뚜렷이 듣지 못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장애우 차별 반대 아니겠는가.

행렬을 뒤로하고 오는 길, 내 삶을 들추어 보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용기까지 잃어가는 소시민이 되어간다.

잠시지만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준 그들에게 감사드린다.


3. 곡우(穀雨)


오늘은 24절기의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다.

봄비[雨]가 내려 백 가지 곡식[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이다.

곡우 무렵이면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마련하며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된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라는 속담이 있건만,

비는 안 오고 황사만 자욱하다.

비는 하루 늦추어 주말에 내린다고 한다.


내게 곡우는 다른 의미로 다가선다.

한때 차[茶]를 무척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붕붕'하는 차(車) 말고 '홀짝홀짝' 마시는 그 차를.


녹차에 우전차라는 게 있다.

곡우 전에 딴 어린 찻잎으로 만든 차라는 뜻이다.

이걸 마셔보겠다고 차밭을 만들기도 했었다.


말이 어린 찻잎이지 실은 덜 큰 찻잎이다.

지금 마셔보면 우전차는 풋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다.


우리들에게는 막연한 영계 신화가 있는 듯하다.

어릴수록 좋을 것 같다는... .

그 허상에 묻혀 여름차의 완숙한, 가을차의 농후한 맛을 보지 못한다.


그게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초의선사의 <다신전>과 <동다송> 덕택인지 모르겠으나,

나 역시 한때 차를 만들 때 그분의 저서에 많이 의존했었다.

지금은 우전(雨前)이니 우후(雨後)니 따지지 않는 홍차를 더 선호한다.


친우가 우전차를 선물로 보내왔다.

차를 우리며, 한 잎 두 잎 온 정성을 다했을 손길과 마음을 생각했다.

남쪽의 싱그러운 봄이 방에 가득했다.

고맙다.

차 인구가 늘어 친우의 이마에 주름 하나 지워지면 좋겠다.

4. 파리여 안녕

그들에게는 재앙이지만 인간들에겐 축복이다.

종묘 이곳저곳에 살충제가 뿌려진다.

파리 모기를 박멸하고 덤으로 날개 달린 개미도 없애는 게 목표라 한다.


처음엔 무차별적으로 농약을 살포하는 행위에 분개했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니 세일한다고 '홈키파'를 4개씩이나 산 내가 비난할 일은 아니었다.


관람객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는데,

그 덕에 나도 파리 모기 없이 생활하지 않는가.

그 독한 냄새 맡아가며 농약 살포하는 종묘 관리소 직원분들께 고마움 전한다.

5. 에이스의 추억

한참 전의 일이다.

(연수를 명확히 밝히면 내 연식이 탄로 나니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그때는 불타는 토요일이라 불렀다.

토요일은 반공일(半空日)이었고.

오전만 일을 하고 오후에는 쉬는 날이라는 뜻으로 토요일을 그리 불렀다.

학교도 당연히 오전 수업만 했다.


커피문화달랐다.

다방에서 크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 넣고 휘휘 저어 마셨다.

아님 자판기 커피였다.


신박한 과자가 있었다.

이름하여 '해태 에이스 크래커'였다.

달달한 커피에 찍어 먹는 맛은 신천지였다.

데이트 때 에이스를 꼭 챙겼다.

(내가 그랬다는 게 아니니, 마님께선 오해 마시라.)


일하시는 분들 간식 사러 마트에 갈 일이 생겼다.

에이스가 눈에 띄었다.

포장이나 모양이 조금 바뀌었으나 바로 그 '에이스 크래커'다.

반가움에 챙겼다.


자판기 커피 대신 아메리카노에 찍어 먹었다.​

맛은 변함이 없다.

잠시 옛 시절을 추억하며 행복했다.

오랜 친구 같아 고마웠다.


오늘의 감사 일기 끝.


작가의 이전글 바람 불어 좋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