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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파니스 Apr 29. 2024

어느 비 맞은 토요일에

240420. 감사 일보 7.

오랜만에 맞이한 노는 토요일.

어제저녁부터, 널리 소문나게 멋지게 보내리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된다면야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이미 어제 낮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었다.

그건 과도한 카페인 때문이었다.

커피가 인생삼락(人生三樂) 중 하나이긴 해도 가능하면 오후에는 멀리하려 한다.

대개가 커피의 유혹은 밤에 더 심한지라, 그때는 디카페인 커피를 즐기는 편이다.


어제 오후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같았다.

자의로 한 번, 권해서 두 번 연달아 아메리카노를 들이부었다.


밤새 곰 마릿수를 세었다.

만 마리쯤 셌을까.

먼동이 터왔다.


아침 7시 집을 나섰다.

지난주 일요일에 검사 맡긴 차를 가지러 가려고.

이때까지도 오후의 계획은 화려했다.


지하철을 타면서 예감이 좋지 않았다.

반대 방향으로 탄 것이었다.

수면 부족 현상이다.


남부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용인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점심때쯤 시작할 거라는 예보에 우산은 가져오지 않았다.

10분쯤 비를 맞았다.


요즘 인사는 커피 한 잔이다.

연로한 형수님께서 커피를 권한다.


광주시 오포읍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비가 동행했다.

셋째 형님이 곧 이사를 한다.

맡겨 두었던 책과 소품 몇 개를 챙겼다.


서울 가는 길,

점심때가 멀었는데 배가 고프다.

그러고 보니 아침을 안 먹었구나.

밀양돼지국밥이 눈길을 잡는다.


며칠 전 누님이 입원하였다.

퇴원한다 하여 가는 길에 들렀다.


집에 오니 오후 4시가 다 되어간다.

이른 저녁 먹고, 대충 운동하고, 글 몇 자 읽으니 밤이 깊다.


화려한 오후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종일 비는 계속되었다.

화려한 계획도 비에 씻겼다.


그래도 감사할 일은 참으로 많은 하루다.


1. 어떤 안부


감사일기를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게재한다.

얼마전 브런치 작가 승인이 나서 이곳도 올리지만.


블로그에 글쓰기를 할 때는 댓글을 막아 놓는다.

천성이 소심하고 게으른 탓이다.

답을 안 하자니 큰 죄를 지은 것 같고,

답을 하자니 너무 힘들어서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을 가지신 분이 참으로 많다.

종종 안부 글을 받는다.

이리 되면 답을 안 할 수가 없다.


며칠 전 감사 일기에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썼다.

특별한 종교적 의미가 아닌,

할머니가 어머니가 반갑고 애탔을 때 불렀던 '하늘님'이었다.

그분은 '하나님'이라고 읽으신 것 같다.


제법 긴 글을 안부 글에 담으셨다.

마지막 문장은 '주님께서 곧 오신다'라고 하시며 글을 맺었다.


나를 애타게 걱정하시는 말씀으로 가득했다.

절절한 그 마음 깊이 새겼다.

열정에 깊이 감사드린다.


2. 천사(天使)


네이버 국어사전에 '천사'가 뭐냐고 물었다.


첫 번째 뜻은,

'천국에서 인간 세계에 파견되어 신과 인간의 중간에서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고 인간의 기원을 신에게 전하는 사자(使者)'이고.


두 번째 뜻은 이랬다.

'순결하고 선량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특별하게 선택받아 나만 그러한 줄 모르겠다.

페이스북에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 맺자고 찾는 분이 계신다.

요즘에는 유튜브에서도 자주 만난다.


큰돈을 벌 수 있는 주식이 있으니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천기누설아닌가.

그런 고급 정보를 널리 퍼뜨리시다니.

그분 혼자 벌기에는 양심상 가책을 느껴 도저히 그럴 수 없었을까.


천사임이 틀림없다.

세상이 불안하고 각박하다고들 한다.

아니다.

저런 분이 계시는 한 아직도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분의 노고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3. 회춘(回春)

페이스북 친구 이야기다.


흔히 말하길,

남자 나이 오십이 넘으면 유통기한이 만료되었다고들 한다.

번식 기능이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쯤 부부는 사랑에서 정을 거쳐 의리로 사는 단계로 접어든다.

진정한 가족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안타까웠을까.

신(神)도 나라님도 못한다는 회춘을 해보겠노라고 친구 요청이 쇄도한다.

알고 찾는지, 대충 찍었는 데 내가 걸렸는지 모를 일이지만,


허구한 날 젊은 처자들이 찾는다.

싫다는 데도 포기하지 않는 저 열정이 존경스럽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내 영역을 침범하기 일쑤다.


지우고 막고 삶에 적당한 긴장감을 있어 참으로 고맙다.

사람이란 너무 편하면 무기력해지는 법.

이렇게 회춘할 수도 있겠다.

4. 양보


어떤 분이 이민을 갔다.


출근하려고 차로 골목길에서 큰 길로 들어서려는데 양보해 주질 않았단다.

그렇게 30여 분이 흘렀다.

각박한 이 땅이 너무 싫었단다.


차선을 변경할 때는 미리 깜빡이를 켜고 뒤 차에게 의사를 전한 후 서서히 진입해야 한다.

운전면허 이론 시험에서도 이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했다가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도 있다.

언제부턴가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깜빡이를 켜면 뒤차가 바로 간격을 좁힌다.

그냥 신속하게 끼어드는 것이 상책일 때가 많다.

모 심리학자는 신자유주의 이후 개인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생긴 현상이라고 했다.


용인 다녀오는 길,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점심을 먹고 도로로 진입하려는데 쉽지가 않았다.

포기할 때쯤 승용차 한 대가 상향등을 켜고 껐다.


그분에게 항상 좋은 일만 있을진저,

나 역시 양보를, 배려를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고맙고 고마운 그분께 이렇게라도 인사 전한다.

5. 돼지국밥을 먹으며


돼지국밥엔 누가 뭐래도 부추다.

뜨거운 국물에 데쳐진 부추와 함께 먹는 고기 맛이 일품이다.

깍두기 한 조각 더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고.

여느 집처럼 추가 반찬은 셀프라고 했다.


셀프(self).

우리말로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말을 써도 어울리지 않는다.

'알아서, 마음껏, 욕심껏, ... .'


오늘 사전 찾을 일 참 많다.

이것도 들추어보았다.

크게 세 가지 뜻이다.

'모습, 자아(自我), 자기 자신의 이익'이다.


앞의 둘은 반찬을 알아서 가져다 먹으라는 말과는 썩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세 번째인 '자기 자신의 이익'과 제일 가깝지 않나 싶다.


그래서 번역을 해 보았다.

"추가 반찬은 셀프입니다."

"추가 반찬은 자기 자신의 이익에 따르십시오."

역시 자세가 안 나온다.


'셀프'처럼 대한민국 요식업 운영에 지대한 혜택을 베푼 단어가 또 있을까.

아마 셀프가 없었다면 개업을 포기한 분들이 상당했으리라. 

모든 요식업 관계자를 대신하여 셀프에게 고마움 전한다.


오늘의 감사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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