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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장 오사주 Apr 26. 2024

2018년에 대한 이해


 어제 만난 내담자는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해와 달을 콕콕 집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족족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를 외쳤다. 내년에 이분은 그동안 뿌렸던 노력의 결실을 맺는다. 물론 수확의 크기는 과거의 노력에 달렸다. 힘든 시간동안 우울함에 빠지지 않고 한해 한해 땀으로 보냈으니 결과가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면 나도 덩달아 신난다. 그런데 내담자가 갑자기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 마지막으로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오, 선생님. 두 개 물어보셔도 돼요.”

“감사해요, 샘. 혹시… 저의 2018년은 어땠나요? 그냥 보이는 대로 말씀해주세요.”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이분에게 2018년은 지옥 같은 해였다. 하는 일 마다 꼬이고 사람으로 인해 마음고생하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 번 일어서 보려 해도 다시 또 넘어져 아파하는 나날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일수록 힘들었던 해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곧 있을 추수 기간에 그동안의 고생을 보답 받는다는 소식을 들으니 힘들었던 해에 대한 미련이 괜스레 남았으리라.


 사실, 나 역시 2018년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그 때,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획득하고 공공기관으로 이직도 했다. 남들 다 가는 대학도 그제야 입학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점심시간과 휴가를 쪼개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캐나다 대학교는 졸업을 위해 각종 인문학, 작문 수업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반 강제적으로 들었던 철학 수업이었지만 꽤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 너무나 희한하고 정말로 감사하게도 교수님들은 아시아에서 온 아저씨인 나를 어여삐 여겨주셨다. 전공을 철학으로 정했다. 졸업후 로스쿨에 가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도 그럴게, 당시 다녔던 회사는 돈이 없어 변호사 사무실에 못 가는 난민, 이민자들의  체류 관련 서류 문제를 무료로 도와주던 공공기관이었다. 변호사가 하는 일과 다를 바 없던 일이 적성에 굉장히 잘 맞았다. 하지만 선뜻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회사와 학교 생활을 병행하느라 하루하루가 고단했다. 빚을 내서 학교를 다니는데 또 한 번 빚을 내 로스쿨까지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결국 다음해 컴퓨터 공학을 복수 전공하고 통계를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졸업하고 IT 기업으로 이직해 빨리 빚을 갚고 지긋지긋한 일과 공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후로 어찌어찌해서 명리 공부를 하고 보니 내가 왜 공공기관에서 변호사 엇비슷한 일을 하고 로스쿨에 갈 생각까지 했는지 이해됐다. 사주에 ‘금’과 ‘수’ 기운이 많아서다. 이 두 오행이 있으면 법과 관련 일에 인연이 있다. 실제로 법원에서 통역 일도 꽤 했으니 사주는 과학임이 분명하다. 사주 보는 일을 업으로 삼고 나서는 나와 비슷한 사주를 가진 사람들을 꽤 많이 봤다. 그중에는 실제로 변호사로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조금만 더 힘냈다면 지금쯤 변호사로 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다. 복잡한 생각에 잠겨있는 걸 알기라도 한듯 내담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편하게 보이는 그대로 말씀해주시면 돼요."

“어… 선생님은 이때 굉장히 고군분투 하셨던거 같아요. 아마 좌절도 많이 했고 힘들었을 거예요. 이때를 견디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대답 대신 한참을 흐느끼던 내담자는 “저 정말 힘들었어요" 하는 말과 함께 목놓아 울었다. 

“알죠.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그건 선생님만 아는 힘듦일 거예요."

“그때로 돌아가면 더 잘했을 거 같아요.”

“음… 선생님. 제 생각에 선생님은 이미 최선을 다하신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이라는 책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읽었는데요. 그때의 선생님은 누구보다 치열했고 누구보다 열심이셨어요.”

“정말요?”

과거를 후회할 필요 없다. 인생은 순리대로 흘러가고 저마다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2018년의 나를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서 로스쿨에 가라고 조언할까? 아니, 넌 이미 열심히 살고 있으니 더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어차피 로스쿨에 갔어도 결국은 돌고 돌아 명리가의 길을 걷고 있을테니 말이다. 아! 타이틀은 바뀌겠다. 철학과 통계를 공부한 사주 상담가가 아니라 이민 변호사 출신 사주 상담가로. 그런데 이거 바꾸자고 몇 년을 개고생하라고? Oh, No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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