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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ore 피오레 Oct 18. 2024

두번의 이별

헤어지는 순간




수현


“우리 헤어지자.”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현은 이 말을 문득 민준에게 꺼냈다. 민준은 아침 출근 준비로 분주했다. 그는 수현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갔다 와서 얘기하자, 수현아. 오늘은 중요한 학회 세미나가 있어.”

수현은 민준의 그런 태도가 익숙했다. 그의 일은 언제나 우선순위였고, 그녀의 말은 늘 뒤로 밀렸다.


“당신은 늘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면 된다는 생각. 왜 내 얘기는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아?”

민준은 잠시 고개를 숙이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수현아. 진짜 지금은 안 되겠어. 네 마음도 알고 있고, 우리 둘 사이에 문제가 뭔지도 알고 있으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민준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수현은 눈물을 머금은 채 그를 바라봤다. 이별의 슬픔이 두 사람 사이에 고요하게 흘렀다.



---


수현은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이었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던 그녀가 어느 날 느닷없이 항공사 면접을 보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던 것은 30대 초반 즈음이었다. 아랍에미리트 항공이었다. 항공사로 출근을 앞두고 혼자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있었다. 바로 그녀의 엄마였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하루 종일 떠들었더니 목이 말랐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4캔에 만 원 하는 칭다오 맥주를 샀다. 작은 목욕 바구니처럼 생긴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고 카운터 앞에 섰다.


‘엄마에게는 뭐라고 얘기하지? 내 결정을 순순히 허락하실 분은 아니잖아.’


아빠가 갓 발령받은 신입 여비서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신 뒤, 그녀만 보고 살아오신 엄마였다. 검은 봉지에 담긴 맥주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쳐다봤다. 여름밤이라 별들이 유난히도 눈앞에서 반짝였다.


아이들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수현은 좋아했다.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일이었다. 영어 유치원을 다니면서 영어를 싫어하게 된 아이들을 수현이 담당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영어를 거부하는데도 영어 학원으로 돌리는 엄마들을 수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영어를 몸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들을 위해 수현은 다르게 접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방법은 단순했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관찰하는 일이 먼저였다. 수현은 먼저 아이들과의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아이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방식을 바꿨다. 지루한 단어 암기 대신에 영어 동요를 부르고, 팝송을 부르며 신나게 춤을 추었다. 아이들이 작은 성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영어 문장을 따라 말하게 하고, 그 후에는 짧은 이야기책을 읽게 했다. 아이들이 영어로 된 문장을 하나씩 말할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자 아이들은 점점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수현이 영어를 가르치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현은 아이들에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되찾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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