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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본 May 03. 2024

<가시고기>-조창인



 군대 동기 중 한 명이 이런 가볍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본아 사람은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사람마다 다를까?

사람. 사람으로서 행복이란 무엇이며 행복은 어떻게 채워질까.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오그라들 수 있지만 사랑이 아닐까.  누군가를 나보다 사랑하고, 누군가가 그만큼 나를 사랑함을 깨닫게 되면 그만큼의 사랑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러한 행복의 이유를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사랑과 그 사랑 안에서의 행복을 생각하며 말이다.



가시고기는 참 이상한 물고기예요.
엄마가시고기는 알들을 낳은 후엔 어디론가 달아나버려요. 알들이야 어찌 되는 상관없다는 듯이요.
아빠가시고기가 혼자 남아 알들을 돌보죠.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답니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은 채 열심히 지켜내죠. 아빠가시고기 덕분에 새끼들이 무사히 알에서 깨어납니다.
아빠가시고기는 그만 죽고 말아요. 새끼들은 아빠가시고기의 살을 뜯어먹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결국 아빠가시고기는 뼈만 남게 됩니다.
가시고기는 언제나 아빠를 생각나게 만듭니다.
내 마음속에는 슬픔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요.
아, 가시고기 우리 아빠.

P.192



 엄마가시고기가 알을 낳은 후로 아빠 가시고기는 남은 모든 인생을 알을 지키는 데에 사용한다. 일 평생을 바친 후엔 자신의 살점을 알에서 부화한 아기가시고기에게 바친다. 작품 속에서는 이러한 가시고기의 부성애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들 정다움, 그 아들을 지키는 아버지 정호연. 백혈병을 치료하며 얻는 모든 아픔들. 진통제조차 이길 수 없는 적나라한 아픔. 또 그러한 아픔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더욱 힘든 아픔. 이 작품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마음의 아픔을 더욱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결국 골수기증을 받아 아이는 살아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럴 때 아버지 호연에게 찾아온 간암. 당장 수술해야지 살 수 있음에도 수술을 미루고 아이의 골수기증 수술비를 마련한다. 모든 수단을 이용하며 돈을 준비한다. 장기매매에 손을 대 외눈박이가 되어서까지 말이다.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직감한 호연은 적대하는 아이의 엄마에게 아이를 맡겨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다.


 아버지 호연의 사랑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약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호연의 사랑을 알 수 있었을까 느낄 수 있었을까. 작품 속 아들 다움이든 글을 읽는 사람이든 말이다.


 책의 글들을 읽어나가며 이런 생각이 들 때. 아빠가 떠올랐다. 내 친 아버지 말이다. 난 어릴 쩍 몽유병이 생겨 집 천장 위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딱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그 일을 목격한 형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고 몇 시간 뒤 평일 저녁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이 오고 소식을 접하자 형만큼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여러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있을 때 묵묵히 지켜보시던 아빠가 예배 때 복장 그대로 오시더니 내 몸에 손을 올리시고는 따라 말하라 했다.


“하나님 지켜주세요. 하나님 지켜주세요. 하나님 지켜주세요.”


 남자끼리라서 그런가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다. 언제 한번 했을진 몰라도 기억이 안 난다. 나도 아빠에게 언제 했나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렇다고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나? 그럴 리가 없지. 눈에 보인다. 아빠의 사랑이 눈에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커녕 제대로 믿지도 않을 무렵 나에게 하나님 얘기는 일대일로 거이 꺼내시지 않던 아빠가 오시더니 기도를 시키시는 그 모습은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생생하다. 행동으로 알게 되는 거다. 행동.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사랑의 감정으로 절여져 오는 것처럼. 나에게도 아빠의 말과 행동이 똑같이 느껴졌다.


  사랑은 말로 안 하더라.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사랑만을 담을 순 없다. 평가를 이렇게 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책이 아니다. 마지막. 다움과 호연의 이별을 읽으며 "사랑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별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샤를 보를레르).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호연은 아들 다움과 작별할 준비를 한다.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을 직감하여 아이의 엄마에게 맡기고 마지막으로 대면한다. '그리움보다 미움이 낫다.' 다움이에게는 아버지의 모습을 버리고 미움을 선물로 주게 된다.


"아빠 나 다움이야. 정다움. 지금도 사랑하지?"
아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막으며, 그는 필사적으로 원했다. 아이가 냉큼 달려오길, 달려와 품에 안기길.
그러나 모진 말을 남기고 말았다.
"아빠는 너를 잊을 거다. 너도 아빠를 잊어버려라. 아예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라."

P.347

 

 그리움보다 미움이 낫다...  

그런가? 만일 그렇다면. 만약 그리움보다 미움이 낫다면 정말 안타깝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지금 내 기억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즐거운 기억이 더 많은 사람들이다. 혹시 지나가다가 마주치고, 우연히 얼굴을 보게 된다면 어제 본 것처럼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 말과 다르게 아이에게 필사적으로 미움을 주려했던 호연은 누구보다 다움이를 그리워한다. 너무 당연한 말을 대단하게 하는 듯 보여도 호연(아버지)의 사랑은 끊을 수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나온다. 호연의 사랑이 말이다. 모든 행동이 모든 말이 모든 판단이 다움이를 위한 행동이었고 그 모든 것이 사랑으로 가능했다.


 잘 가라, 나의 아들아.
 이젠 영영 너를 볼 날이 없겠지. 너의 목소리를 들을 길이 없겠지. 너의 따뜻한 손을 어루만질 수 없겠지. 다시는 너를 가슴 가득 안아볼 수 없겠지. 너에게 아빠의 귓볼을 내어줄 수도 없겠지. 너에게 아빠의 귓볼을 내어줄 수도 없겠지.
 하지만 아들아. 아아 나의 전부인 아들아. 아빠는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란다.
 세상에 널 남겨놓은 한 아빠는 네속에 살아 있는 거란다.
 너는 이 아빠를 볼 수도,들을 수도, 만질 수고 없겠지. 하지만 아빠는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앞으로 걸어갈 거란다. 네가 지칠까 봐, 네가 쓰러질까봐, 네가 가던 길 멈추고 돌아설까봐 마음 졸이면서 너와 동행하는 거란다.
 영원히, 영원히......

P. 350


 조창인 작가가 가시고기를 쓰게 된 이유. 오랜 사귄 친구에게 불치병의 아이가 생겼다고 한다. 고통을 호소하거나  하다못해 푸념을 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 쉽사리 좋아질 병이 아님에도 언제나 친구에게는 좋아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희망이 뭐지 알아? 아이를 위해 그 무엇이라도 대신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 하지만 말이다. 아무것도 대신할 수 없어.
그게 참 견디기 힘들다. "  

작가 후기 중.


 그게 참 견디기 힘들다... 이 한마디로 작가의 다짐은 친구의 애절한 희망만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싶었다는 글을 썼다.


 나 역시 어른이라는 나이가 된 지 몇 년씩이나 지났다. 그러나 엄마아빠 품에 있어선 여전히 십 대 얘 같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얘 같긴 하다. 다움이가 기침이 끝이지 않을 때 아버지가 와 목을 따스한 손으로 문질러 주고 가슴을 쓰다듬어주어야지만 기침이 멎는 것처럼 나 역시 군대에서의 상처와 스트레스가 부모님께 가면 꽤  잘 낫는다. 예전엔 뭐 많이 싸웠던 기억이 있으나 호연이 죽어도 다움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나와 내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는 부모자식관계다. 이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바뀔 수 없다. 이 사실만으로 마음이 놓인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아무리 부모라 해도 그게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곧 찾아올 어버이날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부모의 사랑을 묵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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