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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아래 Jun 13. 2024

[의료] 대답할 기회

2024년 의료 위기를 생각하며

전공의 1년차 여름이었다.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받고 장마비로 인해 한 달째 퇴원을 못 하던 환자였다. 병동 입구에서 우측 복도 끝의 1인실.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외과 전공의 1년차, 이제 막 의사로서 첫걸음을 떼는 나에게, 정치인으로서 이룬 것도 가진 것도 많은 환자의 주치의가 된 것이 처음에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자상한 인품의 환자가 부족한 주치의의 마음을 놓이게 해 주었다. 나는 복부수술 후 장마비가 생긴 경우를 여러 번 보았지만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과거 경험을 떠올리며 며칠만 버티면 된다고 설명했지만, 그 며칠이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매일 수 차례 병실을 드나들며 환자 상태에 호전이 없는지 확인하였다. 그대로였다. 바깥에서는 말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던 환자에게, 아무리 애써도 장을 다시금 움직이게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견디기 어려웠다.


  병원 밖에 할 일들, 중요한 일이 쌓여가는데 그조차 퇴색되게 하는 것이 질병과 싸우는 환자의 현실이다. 병원에 있는 것이 의사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지만, 환자에게는 비정상이다. 이 병실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좌절감. 장운동을 호전시킬 능력은 없지만 그 좌절감이라도 조금 덜어드리고자 한 번이라도 더 환자의 얼굴을 보고자 하였다.


  환자의 한숨을 공유하고 나면, 환자는 마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미소를 지으며 먼저 힘을 내보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은 도리어 나에게 힘이 되었다.




  “그런데 박 선생, 우리나라는 왜 우리 박 선생처럼 외과를 하는 의사들이 부족한 거예요?


  환자의 상태가 아닌, 우리나라 의료의 상태에 대한 질문이었다. 학생 시절부터 외과를 꿈꿔온 나에게는 지나온 수많은 고민과 대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러게요. 언젠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병실을 나갔다. 복잡한 이야기로 환자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사태가 대답을 해주고 있지 않는가 싶다. 수많은 문제들이 얽히고설켜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현재의 난국이, 깔끔한 '한마디'로 요약될 수 없는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이렇게 골치아픈 문제에 대해 과연 우리 사회는 진정성 있게 고민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척 말고, 모두가 납득할 만한 답이 나올 때까지 말이다. 이것이 나의 현실, 또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현실에 속한 문제였다는 것을 뒤늦게 후회하는 것이 두렵다. 이런 문제야말로 우리 모두 멈추어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후회는 과거를 돌이킬 수 없지만, 고민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니까.




  나도 한때 이 질문을 한마디로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간편하게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들이 얽혀 있었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의료는 문화다'.  학생 때 인상 깊게 읽은 말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그때까지도 의료(healthcare)도 의학(medicine)처럼 과학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명명백백한 정답이 있는 과학.


  그러나 의료는 경제 및 정치에 더 가깝다. '사회의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정의롭게 배분 및 활용할 것이며, 우리 사회는 어떤 의료체계를 지향할 것인가'. '국민인 우리는 어떤 의료체계를 목표로 무슨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것이 선진국 의료의 고민 과정이다. 사회적 논의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투명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의 수고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우리에게는 내가 바라는 의료의 모습이 무엇인지 질문받고 대답할 권리가 있다. 내가 아플 때 찾는 병원과, 나의 부모와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의사. 그것을 현실에서 가능케 해주는 의료체계.


  의료체계의 형태는 많고 다양하다. 무상의료를 자랑하는 나라들은 수개월의 대기기간을 당연히 생각한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외국의 '30분 진료'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시간의 대부분이 환자가 원하는 약도 안 먹어도 되고 CT나 MRI 같은 검사도 하지 는 이유를 설득하는 시간인 것을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우리나라 환자들은, 조금만 불편해도 확실하게 약도 챙겨주고 모든 검사도 다 해주는 것을 '기본'이자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여겼다. 과한 면이 있긴 하지만 꼭 잘못된 것일까? 의료는 문화다. 다르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의료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질문받은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없다면, 앞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료가 내가 원하는 것과 부합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더 나은 의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따라서 책임질 리도 없는 누군가가 정해버린 답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고민한 끝에 내놓은 답만이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민은 잠시의 수고를 요하지만 후회는 쓰라린 상처를 남긴다. 미움과 갈등으로 덮어버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더 나은 의료가 무엇인지, 지금 대답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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