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서사 | 누가복음 5:1-11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시몬에게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빈 그물을 씻고, 빈 손으로 퇴근하는 일은 이전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갈릴리 바닷속의 그 녀석들. 시몬은 때로 우주 전체는 아니더라도 바다라 불리는 이 호수 하나만이라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다. 물론 유치한 생각이었다. 자연의 피조물을 창조주 하나님 외에 누가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저 어젯밤은 그 녀석들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수용할 뿐이었다. 늘 그래왔듯이.
그런데 오늘따라 시몬의 마음은 무거웠다. 손에 잡힌 빈 그물을 계속 바라보니, 문득 내 안도 텅 비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물 위에 얼굴이 비치듯이, 빈 그물에는 그의 빈 내면이 반사되는 것 같았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왜 이럴까. 아마 예수라 하는 저 랍비 때문이 아닐까, 시몬은 짐작했다.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는 이 젊은 랍비. 시몬은 이 예수가 여느 랍비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지까지는 잘 몰랐다. 그냥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떼로 몰려와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그물을 씻으며 어쩔 수 없이 청중의 일원이 된 시몬은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그리고 갈릴리의 다른 어부들-은 한가하게 젊은 랍비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오늘 먹고살아야 하나님 나라든 뭐든 생각할 겨를이 생기지. 그런데 오늘의 수확은...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 주시겠소? 젊은 랍비의 목소리였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니 젊은 랍비는 이미 배에 올라 있었다. 시몬의 배 위에. 끊임없이 몰려오는 인파 때문에 예수가 호수에 빠질 지경이 된 것이었다. 이 사람들 참...
그러지요. 당황한 시몬은 예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잡은 물고기도 없으니 정리할 것도 별로 없었다. 그가 배에 다시 올라 노를 저었다. 서서히 배는 육지에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예수는 아무 일 없었듯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시몬과 단둘이 있는 그 배에서.
아멘입니다! 예수가 이야기를 끝마치자 무리들의 얼굴이 환해진 느낌이 든 것은 착각이었을까. 해가 떴으니 그럴 법도 했다. 이제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겠구나. 시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두 팔도 이제 지치고 있었다. 시몬은 젊은 랍비에게 이제 물 위 강단 세팅은 종료하겠다는 눈치를 주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젊은 랍비의 눈빛은 마무리 짓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하는 눈빛이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예? 예상치 못한 지시에 시몬은 당황했다. 물고기가 밤에, 얕은 물에서 잘 잡힌다는 사실은 갈릴리의 초심자 어부도 잘 아는 상식이었다. 목수 출신의 젊은 랍비 예수가 이를 몰랐던 것은 둘째 치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부인 나에게 이런 지시를 하는 것인가. 시몬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선생님, 저와 제 동료들은 밤이 새도록 이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올리고, 또다시 던졌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은 지 20년도 넘었습니다. 저 빈 그물들, 보이시지요? 오늘은 날이 아닙니다. 이제 곧 퇴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젊은 랍비의 지시를 따를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어떤 까닭인지 시몬은 문장을 매듭짓지 못했다. 예수의 말은 그의 머릿속에 메아리치기를 그치지 않았다. 깊은 데로 가라. 마치 그의 마음속에 무언가가 그 음성을 환영하는 것처럼, 예수의 말은 시몬 안에 머물기 시작했다.
-하려는 길이었지만, 선생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그리하겠습니다.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시몬은 자신의 행동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싹튼 무언가의 정체를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기대였다. 그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예수의 말을 따르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깊은 데로 가자. 가서 그물을 내려보자. 기분 탓인지 노를 젓는 시몬의 팔에 새 힘이 돋는 것 같았다.
시몬이 그물을 내린 후, 때를 기다리기도 전에 때가 찾아왔다. 마치 갈릴리 바다가 잠에서 깨어나 그물을 삼켜버리는 장면 같았다. 밧줄의 말단이 간신히 손에 잡히자 시몬은 그물을 당겨 보았다. 바다는 시몬조차 삼키려 했다. 시몬은 온 힘을 다해 바다와 씨름했다. 그리고 이겼다. 바닷속에서 건져진 그물은 바닷속의 물고기를 몽땅 체포하기라도 한 것처럼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그물이 찢어지고 있었다!
시몬은 동료 요한과 야고보에게 손짓으로 얼른 와서 도와달라고 신호했다. 숙련된 어부는 바다의 선물을 환호성으로 맞이하지 않았다. 그러면 일행이 아닌 다른 어부들까지 와서 자기들의 그물을 던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요한과 야고보는 시몬의 신호를 일찍이 보고 지체 없이 손을 보탰다.
믿기지가 않았다. 시몬과 요한, 야고보 이 세 사람은 한동안 배를 가득 채운, 파닥거리는 생명체들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말 한마디 없이 그들을 둘러싼 이 기적의 장면을 바라보았다.
시몬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이 상황의 장본인인 예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지만,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듯이, 너무도 태연하게, 예수는 바라보고 있었다. 시몬을.
시몬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이제 그에게는 또 다른 씨름이 시작되었다. 그를 마주 보고 있는 이 예수를 해석해 내려는 씨름. 지금 예수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란 시몬에게 없었다.
예수가 얼마든지 이런 일을 다시 재현할 수 있겠다고, 시몬은 짐작했다. 그러나 감히 동업자가 되어 달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모든 사심은 이 커다란 물음표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는 왜 이런 능력을 자신의 생계를 - 더 나아가 명성을 - 세우는 데 활용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도망치고 싶다. 가슴에 갇힌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배에 갇힌 시몬은 그 어디로도 뛸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냄새나는 바닥을 향한 시몬의 외침은 온 배에 진동했다. 주여, 어서 저를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예수 앞에 시몬의 모든 것은 더 이상 설 수가 없었다. 예수의 모든 것이 시몬의 가치관, 방향성 없는 삶과 지금의 상태에 대한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만선을 이룰 능력이 있으면서도 수산업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들을 가르쳤다. 사회에서 외면당한 자들, 사례할 길 없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전했다. 병든 사람들을 낫게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된 예수의 삶 앞에, 시몬은 과연 자신의 삶은 무엇에 헌신되어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다. 마침내 형성된 그 의문은 시몬의 암담한 상태를 적나라하게 밝혀 버렸다. 그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답이 없다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그를 불안에 빠뜨렸다. 매일같이 물고기 잡이에만 몰두하며 살던 그였다. 인생은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도, 특정한 방향도 없었다. 돌아보면, 그의 인생은 항상 그랬다. 그저 먹고사는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 그에게 인생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삶은 이런 시몬을 반박하고 있었다.
두 배를 가득 채운 어획 앞에서도 물고기 한 마리를 쳐다보지 않았던 예수는 시몬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시몬도 모르는 무언가를 시몬에게서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매일 갈릴리 바다만을 의미 없이 맴도는 시몬, 텅 빈 마음으로 빈 그물을 씻던 시몬을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불현듯 그가 물고기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니라, 시몬을 위해 온 것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인생은 네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것이다. 너의 삶은, 그렇게 의미 없이 허비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다. 절대자의 이의 앞에, 시몬은 두렵고 떨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단죄가 아닌, 새로운 시작의 희망으로 시몬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몬아, 무서워하지 마라. 너의 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거라.
시몬은 일어섰다. 그리고 깊은 바다로 나아갔을 때보다 더 크고 확실한 기대를 품고 예수가 가르치는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갔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는 몰랐지만 한 가지만큼은 단언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끝이, 오늘이라는 것. 이제 무한히 깊은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