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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 Apr 07. 2020

오늘 야식은 파운드케이크로

빵과 커피에 관한 에세이 08

소울브레드의 파운드케이크


파운드케이크 밀가루와 버터, 설탕, 계란으로 만드는 영국식 케이크. 머랭이 들어가지 않고, 별립법 등의 까다로운 공정이 없어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과일이나 초콜릿, 녹차 등의 다양한 부재료를 첨가할 수 있는 것도 특징.



“버터랑 설탕 밀가루 계란이 1파운드씩 들어간다고?” 언젠가 찾아본 파운드케이크의 기원은 더더욱 내가 이 디저트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마치 파운드케이크는 나를 위해 맞춤으로 만들어진 디저트 같았다. 직사각형 모양을 한 큼직하고 투박한 녀석. 밀도가 있어 제법 무게가 나가고, 스콘보다는 덜 뻑뻑하면서도 우유를 부르는 그 포슬 하고 촉촉한 식감을 가졌다. 거기에 버터의 고소한 맛과 은은하게 흐르는 달콤함은 물리지도 않았으니.. 한 때 ‘나는 과연 파운드케이크에 단점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는 했었다.

가성비가 장점인 쟝블랑제리의 치즈 파운드와 진한 맛이 매력적인 오피스오브의 흑임자 파운드


“와 이렇게 큰데 5천 원이야?” 어느 시장 빵집에서 발견한 파운드케이크는 큼지막한 크기에 노란색 유산지로 감싼 자태를 가지고 있었다. 역시나 여기서도 가성비가 등장했다. 남자들은 다 그런 식이다. 요즘엔 인터넷을 보니 모든 음식을 5천 원짜리 국밥과 비교하는 밈이 한창 유행을 타고 있었다.  “저거 먹을 바에야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먹지” 였던가? 나도 저때는 그랬었다. ‘이거 살 바에야 파운드 먹지.’  그런 생각으로 파운드에 빠지기 시작했다. “역시 난 후르츠 파운드인가 봐...” 이때부터 건과일이 들어간 빵이 가장 좋아졌다. 이후로 뭘 사도 건과일 들어간 걸 골라대다 보니 (후르츠 깜빠뉴, 후르츠 식빵...) 같이 다니는 동생은 긴 한숨을 내쉴 때가 많았다. 후르츠 파운드였던 이유는 그냥 먹기엔 아무래도 밋밋한 감이 없잖아 있던 파운드에 씹는 식감이나 새콤달콤함을 더해주어서 그랬었다. 물론 가격이 싼 파운드케이크의 경우에 대개 그랬고, 가격대가 조금 나가는 파운드는 사실 별다른 부재료가 없어도 맛이 좋았다. 별개로 나는 크람케이크, 시나몬 파운드라고도 부르는 빵도 참 많이 사다 먹었다. 크람 가루와 딸기잼이 위에 뿌려진 초코 파운드. 원형이 가장 많았던 이 디저트 역시도 옛날 빵집에서 많이 볼 수 있었고, 우유와는 그 궁합이 참으로 잘 맞았었다. 역시 국진이빵처럼 인식이 좋지만은 않은 녀석이다.

이몸이만든빵과 브라운아지트의 후르츠 파운드

“와 조각에 3천 원이나 해?”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빵집을 가게 되고 다양한 파운드케이크를 먹어보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취향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유명하다는 빵집에 파운드케이크는 보통 하나씩 있었다. 제법 큰 제과점에선 케이크를 파는 자리에 고급진 포장을 곁들여 꽤 비싼 가격에 팔고 있었고, (나는 기회를 노려 한두 번 사본 적이 있다.) 개인 빵집에선 조각 단위로 썰어 팔고는 했다. 옛날 빵집의 파운드케이크만 먹던 나에게 사실 고급진 포장의 파운드케이크나 조각 단위의 파운드케이크는 쉽게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마치 동네 호떡을 호텔에서 사 먹는 그런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와 이렇게 다양한 파운드케이크라니” 그래도 도통 궁금하다 보니 안 먹어볼 수가 없었다. 세상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파운드케이크가 존재했다. 각자 다 맛도 식감도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파운드케이크는 절대로 가벼워서는 안 되고, 포슬 하고 바스러지는 질감이어도 괜찮지만 그래도 너무 푸석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수분감이 있는 파운드여야 했다. 그리고 속 재료가 들어간 경우에는 많아야 했다. 감질나게 적다거나 그 맛이 약할 때는 역시나 재미가 없었다.

인생 파운드케이크였다.

가장 좋아했던 곳의 파운드케이크는 단연 꼼다비뛰드의 ‘케이크 오 프뤼’ (과일 케이크)였다. 조각은 크지 않았지만 그 맛 하나만큼은 남달랐다. 럼에 충분히 절여져 그 향이 풍부한 과일이 가득 들어간 케이크. 파운드 자체의 식감 또한 무게감이 있으면서 절대로 마른감이 느껴지지 않는 촉촉함까지. 이 케이크는 따로 홀 사이즈를 구매할 정도로 좋아했는데 이제는 다시 먹을 수가 없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바닐라 파운드 또한 명불허전이었다. 그립다 그리워) 어쩌다 보니 서로 잘 알게 된 합정역 이 몸이 만든 빵의 사장님께서는 후르츠 파운드를 큼직하게 구워내셨다. 살구 프룬 등의 과일을 가득가득 채워넣으셔서 단면에 과일이 확 드러났다. 큰 과일이 통으로 씹히는 식감이 남달랐던 파운드. 옛날에 먹던 후르츠 파운드의 과일이 거의 건포도, 파파야, 오렌지 필 정도를 잘게 다진 정도에 그쳤다면 이러한 베이커리에서 만드는 후르츠 파운드는 과일의 크기와 질, 종류부터가 달랐다. 생소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맛이 좋았다. 홍대에서 망원으로 자리를 옮긴 라베리타(구 트루로맨스)의 바닐라 파운드 또한 그 묵직한 식감과 타히티 바닐라의 고급진 향이 매력적이어서 ‘아 이런 게 진짜 바닐라의 매력이구나’하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고, 최근에 먹은 치즈 파운드나 고구마 파운드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흔함과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풍미가 있어 무척이나 맛이 좋았다.

기억나는 곳을 계속 적어보자. 연남동의 호라이즌 16의 파운드케이크도 많이 먹었었는데 말이다. 레몬 파운드케이크가 시그니처처럼 알려졌지만 주변 사람들이랑은 코코넛 파운드를 가장 좋아라 했다. 그밖에도 홍차나 피스타치오 파운드 등 먹을게 많은 가게. 조각이지만 큼지막한 크기도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항상 다른 디저트를 사러 갔다가 파운드를 더 집어왔던 기억이 난다.


호라이즌 식스틴(좌2)와 라베리타(우)의 파운드케이크

파운드케이크로 생활의 달인에 까지 나올 정도로 유명한 스퀘어 이미와 렁트멍도 빼놓을 수가 없지. 스퀘어 이미는 종류도 다양하고 이름 또한 감성적으로 붙여진 파운드케이크가 많았다. 그리고 한 가지 맛이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의 재료를 복합적으로 곁들이신 것도 특징이었고. 다른 파운드케이크보다 조금 더 수분감이 있어 부드럽게 먹을 수 있었다. 뭐랄까 러프한 영국보다는 아기자기한 일본의 느낌을 가진 파운드. 나는 물론 겨울쯤에 나왔던 슈톨렌 파운드케이크를 좋아했었는데, 솔직히 이곳의 파운드는 정말 뭘 먹어도 다 내 입에 그만이었다.

렁트멍의 파운드케이크는 식감적으로 가장 독특했다. 고슬 거리는 면도 있지만 낮은 높이만큼이나 밀도가 높고 무거웠다. 꾸덕한 식감이라고 해야 할까? 사장님께선 외국에서 요리를 하셨었는데 건강한 재료에 대한 관심이 많으셔서 맛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건강한 국산 재료를 많이 찾으셨다. 물론 맛은 충분히 좋고 남았다. 가장 처음 나온 얼그레이 맛이 유명했지만 그 이후에 나온 파운드 모두가 좋았으니 말이다. 속에 고구마가 박힌 단호박 맛도 매력적이고, 흑임자나 레몬 파운드 등 재료의 특징이 뚜렷한 파운드를 내어 놓으셨다.


스퀘어 이미의 파운드케이크
렁트멍의 파운드케이크

이렇게 다양한 파운드를 먹으면서 이번에도 내 입맛은 높아져버렸다. 항상 그렇지만, 다양하게 먹어봐야 기준이 생기고, 자신의 취향을 알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시장 빵집의 후르츠 파운드를 무척이나 좋아해 아직까지도 자주 사 먹는다. 최근엔 연희동 독일 빵집의 후르츠 파운드가 참으로 좋았다. 시장 빵집은 아니지만 다양한 빵집이 즐비한 연희동에서 거의 유일하게 옛날 스타일의 빵을 파는 곳이 아닐까 싶다.

언제가 부평의 브라운 아지트라는 베이커리에서 이 시나몬 파운드를 사다 먹은 적이 있다. 젊은 셰프님께선 자기는 재고처리 목적이 아니라 온전히 이걸 만들기 위해 케이크를 구우셨다고 했다. 정말로 맛있었다. 촉촉한 식감부터 예전에 먹은 크람 케이크와 달랐다. 향도 맛도 그만이다. 내가 먹어본 크람 케이크 (시나몬 파운드) 중에선 독보적이었다.


연희동 독일빵집의 후르츠 파운드와 브라운아지트의 시나몬 파운드 등 나는 여전히 이런게 좋다.

발전은 이런 게 아닐까?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던 5000원짜리 벽돌 파운드부터 한 조각에 5000원을 호가하는 고급 파운드까지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선택지가 많아졌다. 재료의 유행, 스타일의 유행에 따라 이런저런 다양한 파운드케이크가 세상에 나와 시선을 사로잡는다. 말차 앙버터 파운드케이크란 것도 본 적이 있다. 심지어 이렇게 크람 케이크를 질 좋게 만들어내는 베이커도 나왔으니 내 입장에서는 좋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 캐비어 파운드가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좋은 기술을 가진 가게가 점점 늘어나, 꼭 유명하다는 곳을 가지 않아도 근처에서 양질의 빵을 접할 수 있는 요즘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에도 조금씩 이러한 빵집들이 생겨나고 있고, 서울은 정말 동네마다 퀄리티 높은 베이커리 한 곳쯤은 찾아볼 수가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독일빵집 같은 곳이 남아 있다는 건 나에겐 즐거운 요소고 말이다.) 정말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 보면 어디를 가도 다 맛있는 빵을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인다. 늘어난 파운드 종류만큼이나 늘어난 가게들. 꼭 찍어서 맛집을 가지 않아도 분명 맛난 파운드가 반겨줄 것이다. 물론 내가 파운드케이크를 좋아하다 보니, 전부 다 맛있다고, 좋다고만 적었을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어떤 것”에 대한 글을 적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많은 가게가 나오고, 많은 이야기를 쓰게 됐다. 그래서 글도 길어졌다.


모루과자점의 파운드케이크

“너무 사심 가득이라고?” 하지만 이 파운드케이크라는 디저트가 가진 매력이 그렇다. 커다란 홀 사이즈 파운드를 가족끼리 혹은 모임에서 노나 먹는 푸근함도 지녔고 새로 사귄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날에, 고급스럽게 포장된 몇 가지 조각 파운드로 멋들어진 선물이 되는 세련됨도 지녔다. 모든 상황을 아우르는 팔색조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우유나 커피, 혹은 차에 콕 찍어 먹는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의 매력에 빠져보자. 보존성 또한 높아 며칠을 두고 먹기에도 좋다. 자 오늘 야식은 내가 결정해 줬다.



이번 주제는 파운드케이크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라 하는 디저트다 보니 사진이 정말 많이 들어갔네요.

우유랑 먹으면 찰떡이라고 많이들 하시죠.


저는 요걸 큰 덩이로 가져다가 야금야금 떼어먹는 걸 무척이나 즐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견과류나 과일이 붙어있는 부분을 먹을 때면 약소한 희열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이런 류 중에서는 라블레라고 하는 호두로 만든 케이크도 좋아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라블레는 쟝 블랑제리의 것이 정말 일품이었는데 얼마 전에 가보니 단종되어 참 슬펐네요.


중간에도 적었지만 옛날 빵집의 파운드케이크만큼은 아직까지 제 입에 딱 맞는 빵 중 하나입니다.

고급 파운드와 다른 그 매력이 있어요 이게 또 하하

연희동 독일빵집은 사실 오래전부터 들르던 가게인데 새삼 후르츠 파운드에서 급 놀랐네요. 분명 그 전에도 먹어봤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최근에 생긴 인천의 브라운 아지트.

저희 집에서 멀지 않은 빵집인데 젊은 셰프님께서 참 빵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셨어요.

이런 시나몬 파운드를 만나다니 그저 감사했습니다. (파이 계열이랑 러스크 강추입니다.)


사실 야식으로 치킨도 떡볶이도 피자도 참 좋지만

밥을 먹고 나면 사실 단 음식이 당길 때가 저는 더 많은데요.

그래서 깔끔하게 먹을 수 있고 과하게 달지 않은 파운드케이크를 특히나 찾곤 합니다.

모루 과자점의 파운드처럼 미니 파운드 여러 개를 골라가며 집어먹는 것도 참 쏠쏠하죠.


아, 아이스크림을 올려먹어도 그만이란거 알고 계시죠?


바로 이렇게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사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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