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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하이디 Jan 05. 2025

그냥 아줌마 아니거든요?

아직은 5학년 소녀라는

 

그 이름도 대단한 아줌마! 사전상 의미는 “남남끼리에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아주머니를 칭하는 말”로 되어있다. 프랑스 세계 언어 사전에도 한국의 <아줌마>라는 단어가 실렸다. “집에서 살림하는 40대 이상의 여자로 자녀를 다 키운 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어 높은 구매력을 가진 한국 특유의 집단.”이라는 뜻풀이가 무척 흥미롭다. 또 다른 사전에 나와 있는 내용에는 “아주머니를 홀하게 또는 친숙하게 일컫는 말”이라고도 되어있다. 홀대하는 듯한 이 호칭 뒤에 따라오는 참을 수 없는 그 초라한 느낌이란 당해본 사람만이 알 거다.      

1년 전 손녀가 탄생해 할머니라는 계급장까지 딴 나, 아직도 니삭스를 즐겨 신는 안 아줌마로 늙어가고픈 나! 그 이유를 자신에게 물어봤다. 생활력이 강하다 못해 억척스러운 아줌마의 암묵적인 이미지가 싫었다. 적어도 나는 여자여자 하며 살다 가고 싶다.      

딸아이가 다섯 살 때 집 근처 문화센터에 유아반부터 성인반까지 하는 발레 강좌가 있었다. 평소 다리 찢기가 특기인 나는 아이와 함께 등록했다. 가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유연함 그 자체여서 선생님처럼 일자 뻗기가 가능했다. 날마다 우아한 자태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가느다란 새 다리의 소유자인 나는 어릴 적부터 잘 넘어지고 좀 오래 걸었다 싶으면 다리가 몹시 쑤시고 아팠다. 소풍이라도 다녀온 날엔 밤새 잠도 못 자고 울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 홍학 다리의 단점이 기회가 될 타이밍인가 싶었다.

뱃살만 랩스커트로 잘 커버하면 가는 팔과 다리로 거울에 비친 모습은 그럴싸했다.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자 어깨를 곧게 펴고 고개를 똑바로 들고 걷는 자세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신문을 읽을 때조차 발레 자태로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부터 마음에선 아줌마라는 이름표를 제대로 떼버린 듯하다. 걸을 때 다리 안쪽이 벌어지지 않게 신경 쓰며 걷고 목을 길게 위로 뽑듯 세운 체 눈을 아래로 치켜뜨고 거울을 보았다. 도도했다. 마치 발레리나라도 된 양 귀에선 백조의 호수 음악이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발레 연습 중 발목을 다쳤고 꿈은 산산이 부서져 내리고 말았지만.     

옷장엔 각가지 컨셉의 옷들로 가득하다. 그중 무릎 위 길이의 짧은 원피스들을 절대 버릴 수 없다. 멋진 카페로 사진을 찍으러 가거나 멋 좀 부린다는 친구들 모임에 입고 나가야 하니까. 물론 자리를 보고 맞춰 치마 길이를 정해 입는다.     

‘옷’이라는 의미는 다양하다. 아줌마 되기를 거부하는 내게 있어 옷은 기능보다 효과다. 내 모습을 달라 보이게 만들어주는 마술 같은 옷을 입을 때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양 기분이 밝아진다. 죽는 순간까지도 이 맛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어쩌면 관속에 들어가서도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미소를 지으며 누워있을 것만 같다. 나쁘지 않다. 내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영어 이름으로 정한 순간부터 나는 그냥 소녀다. 늙어서 주름이 자글거려도 소녀! 내 마음의 온도는 그렇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누군가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보자마자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잔인하게 말했다 “하이디 아닌데?”라고. 모습은 아닌 듯 보여도, 당연히 아니어도, 나는 할머니도, 아줌마도 아닌 소녀 하이디다!     

사람의 신체 나이와 정신 나이는 다르면서도 같지 않을까? 살짝 비틀어 말하자면 정신 나이에 신체가 의존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고 약해진 신체가 정신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너무 흔한 말임에도 “정신이 밝고 넓으면 어둡고 좁은 신체의 우울함을 끌어올릴 수 있다”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고통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크기가 변할 수도 있다는 나름의 믿음이 어느 순간부터 생겼다. 잠시 내 허리가 늘 아프고 무릎이 쑤셔 약으로도 통증을 다스릴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정신의 힘이 약하면 늘 끌려다니게 되는 건 자명하다. 그런데 그 정신의 힘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으니 미리 쌓아두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정신의 힘을 길러 젊은 정신을 만들어 유지할 것인가? 이것이 아줌마를 거부하는 하이디의 숙원이며 살아가는 이유다.     

그 방법의 첫 번째는 잘 웃는 일이다. 가능하면 의도적으로 많이 웃으려 노력한다. 미소 주름이 입가에, 눈가에 생기면 잠들기 전 마유 크림 듬뿍 바르고 자면 된다. 

두 번째 방법은 잘 자는 일이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비우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베개 삼아 푹 자는 일이 중요하다. 사실 나는 애착 베개가 있다. 이 베개를 안고 자면 잠이 잘 온다. 11시간이 넘는 해외여행을 가면서도 가지고 갈 정도다.

세 번째로는 잘 먹는 일이다. 평소보다 많이 먹었을 때 위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자동으로 적게 먹게 되었다. 하루 세끼를 제대로 꼬박꼬박 먹으면 아랫배 윗배는 정확하게 부풀어 오른다. 집에서 만든 요플레에 견과류, 블루베리, 바나나, 울금 가루, 콜라겐 가루를 넣어 한 끼 든든하게 먹는다. 제주도 여행 때 사 온 상황버섯 가루를 매일 두 스푼 씩 2년 넘게 먹었다. 믿음이 있었다. 내 면역력을 키워줄 거라는. 그 결과 코로나에도 걸리지 않을 만큼 효과가 있었다. 따뜻한 물을 사계절 가지고 다니며 마신다. 맵거나 짠 음식은 물론 술은 내 몸에서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마지막으론 운동이다. 1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헬스장은 가는 것 자체가 일처럼 느껴져 아파트 내에 있는 작은 헬스장에 간다. 유산소 운동으로 러닝머신과 날씬한 허리를 유지하기 위해 훌라후프를 한다. 특히 가장 선호하는 거꾸리 운동기구는 우리 몸이 아래로 계속 처지는 부위들을 잡아준다. 혈액 순환에도 도움이 된다. 1시간 남짓 하는 운동이지만 부담감도 없고 좋다. 허벅지 근육을 위해선 스쿼트 운동을, 코어를 잡아주는 플랭크도 한다. 

일에 있어 30년 넘게 해 왔으니 이제는 하고 싶은 정도로만 하면 편안함을 느끼며 즐길 수 있다. 안정적인 유쾌함 속에서 많이 웃고 잘 자고 좋은 거 골라 먹을 줄 알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지내는 요즘 NON-아줌마로 가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무릎이 쑤시고 허리가 아픈 날에도 신나는 음악 틀어놓고 지긋이 눈감고 입가에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고 좋아하는 글쓰기 하며 퉁증을 잊을 수 있도록 다듬어봐야겠다. 왜? 그냥 아줌마 아니니까. 그냥 아줌마로 살기 싫으니까. 그래도 넌 할머니? No! ‘non-grandma, 하이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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