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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연습

by 헬로하이디

내 고향은 전주 한옥 마을! 그곳엔 엄마가 있다.

언니와 나는 엄마를 만나러 간다.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쉬지 않고 나눈다. 엄마 걱정이 제일 크다.


90이 넘으신 우리 엄마는 젊었을 땐 천하장사 같았다. 호탕하게 웃고 뭐든지 해내는 손 빨랐던 엄마가 이젠 요양원에 계신다.


처음엔 그런대로 슬기로운 요양원 생활을 하셨다. 끼니도 잘 챙기게 되니 혈색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엄마 요즘 어때? 얼굴은 좋으시네. 선생님들이랑 친구 할머니들이 잘해주셔?” “암만, 잘 지내지. 여기 영감들이 이 박 여사를 제일 좋아 혀. 인기가 짱이당께! 하하하”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된 계기는 화분을 옮기다 허리를 다쳐 걷기 힘들면서였다.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지만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4남매는 1주일을 마다하고 전주로 내려가 엄마를 보살펴드려야만 했다. 낮엔 도우미분이 옆에 있었지만 혼자 계셔야 하는 밤이 문제였다. 고민 끝에 공기 좋은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요양원에 가신 지 1년이 되었을 때다. 매일 차례를 정해 통화를 하면 돌아가신 아버지 흉을 주로 보시던 엄마가 로맨스 드라마는 저리 가라 달달한 멘트까지 넣어 아버지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변해갔다. “집에 먹을 게 없어 시장을 가야 하는데 문을 안 열어 줘” 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흐려진 기억 속에서 아들을 동생이라 부르다가도 어느 날엔 손주들 이름까지 다 기억하시곤 했다. 엄마의 알 수 없는 컨디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적응해야 했다.


자식들 중 우리 집에 가장 많이 오셨다. “할머니! 난 할머니가 와서 너무 좋아요. 오래오래 자고 가요.” 표현력 좋은 아이들의 따뜻한 말이 엄마를 자주 오게 했을까? “뭐 먹고 싶어? 옷 사러 갈까? 날도 좋은데 놀러 가자” 살갑게 구는 이 막내딸 때문이었을까? 집에 오자마자 직장 생활로 바쁜 딸을 위해 여기저기 정리 정돈을 시작으로 이불빨래까지 다 하고서야 그녀의 일정이 끝이 났다.

엄마가 전주로 돌아갈 때면 좋아하시는 반찬에 간식, 예쁜 옷과 용돈을 아낌없이 챙겨 드렸던 게 어찌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한은 없다.

‘뭐라고? 엄마가 돌아가셔도 여한이 없다고? 그렇게 완벽하게 엄마를 잘 모신 거라고? 그건 아니지.’

도와주는 건 좋은데 제발 옷이며 물건을 엄마 마음대로 엄마만 아는 곳에 넣어놓지 말라고 소리치고 심지어 어떻게 본인이 치워놓고 기억을 못 할 수 있냐며 답답해하지 않았던가!


엄마가 처음 요양원에 가던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리저리 사방으로 튀는 빗방울처럼 우리 형제들 마음도 편친 않았다. 엄마는 연신 말했다. “내가 가야 너희들이 편하지. 왜 이렇게 안 죽어지는지 모르겄다.”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 정적이 흐른다. 눈을 감은 채 인상을 찌푸리고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 엄마를 뒤로 하고 왔기 때문이다.


‘오늘이 엄마와의 마지막 만남이었을까?’


언제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늘 가슴 한편이 먹먹해져 온다.


연습해야 한다. 헤어져도 괜찮도록 말이다.

언니와 나도 엄마처럼 조금씩 기억이 흐려지고 주름이 늘며 늙어갈 날이 곧 올 것이다.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 그저 자연의 섭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잘 헤어지자. 잘 살아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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