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로 살고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정작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사람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 낳고 SNS를 시작했다. 아이의 커가는 모습, 아이가 한 말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자주 열어보기 위해서였다. 비슷한 또래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에게서 정보도 얻고 소통하기에도 좋았다. 아들, 딸 자라는 것을 시댁 어른, 친정 부모님께 일일이 찾아가 알리지 않을 테니 알아서 챙겨 보라는 의도도 있었다. 예쁜 가정을 이뤄 잘살고 있다고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개월 수에 비해 발달이 빠른 아이의 모습을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를 위해 나들이도 다니고 책도 자주 읽어주며 요리도 하고 놀이도 재미있게 해 주는 좋은 부모로 보이는 데 SNS만 한 것이 없었다.
금방 올린 사진과 글에 ‘좋아요’가 몇 개나 달렸는지 들여다보며 ‘좋아요’ 숫자에 하루 기분이 좌우되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밥 한 숟가락 더 먹으면 사진을 찍었고, 가족이 함께 웃는 장면에 필터를 씌워 SNS에 올렸다. ‘행복한 가정’, ‘부지런한 엄마’, ‘센스 있는 교사’ 같은 태그를 붙이고 누군가의 “대단하세요!” 댓글 한 줄에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그런데 SNS 활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예쁜 각도로 사진을 찍으려고 아이에게 억지웃음을 강요하고 카메라 앵글 안의 공간만 깔끔해 보이려 애쓰는 나에게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아이와 기를 쓰고 싸웠는데, 아이 재워놓고 행복한 일상이었다며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는 게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좋아요’는 나의 내면을 채워주지 못했고, ‘좋아요’에 매달릴수록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져 갔다. 엉터리로 살고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정작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사람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다.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에 즐거움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의 인정을 바랐던 나의 어리석음은 꾸준한 SNS활동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성인이 된 이후 글솜씨를 뽐내던 SNS는 그렇게 문을 닫게 되었다.
어렸을 때엔 매일 해야 하는 일기 검사 때문에 억지로 일기를 썼고, 학생 몇 명 없는 시골 마을에서 그나마 주어, 서술어 빠지지 않는 글을 쓰니까 백일장 대회에 차출되어 나간 경험이 있긴 했다. 일단 뭐든 하면 잘해야 된다는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나의 대충은 성에 안 차던 고약한 성미 때문이었을까. 내가 쓴 글은 친구들에게 일기는 이렇게 써야 하는 거라며 읽어주는 샘플이 될 때가 잦았고, 백일장에서도 장원은 아니었지만 늘 차상이나 참방 상장 하나쯤은 받아 올 정도로 썩 나쁘지 않았었다.
그런데 되짚어 보니, 그때도 나는 글 쓰는 것 자체보다 글을 읽는 누군가의 인정에 쾌감을 느끼던 아이였다.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그 짧은 순간이 좋았다. 숙제라 글을 쓰게 됐고, 타의로 글을 써 나갔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미 나는 그 시절부터 글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었던 거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글과 멀어졌다. 학교에서 쓰는 공문서나 보고서 말고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국어 시간에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도 쓰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 대충 글쓰기 지도만 하고 넘어가갈 때가 많았다. 아이들에게 진정성 있는 글을 쓰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내 삶을 진솔하게 글에 담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글은 내 인생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공언의 힘이 얼마나 큰지, 공언한 것을 현실로 이루어 내 본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구독자 18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에서 강연할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나의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하고 변화된 삶에 대해 발표하기 위해 원고를 작성하다가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어렸을 적 꿈을 기억해 냈다. 이왕에 글을 써서 상을 받게 된다면 지역 백일장의 장원이 아니라 노벨 문학상을 받고 싶다는 꿈.
그날 나는 대한민국 제1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되겠다는 큰 꿈을 천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공언하고야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강 작가가 대한민국 제1호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지만, 그렇다면 2호든, 3호든 상관없다는 오기가 불끈 생기고야 말았다. 그 공언을 지키는 것이 꿈만 같은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나는 좋든 싫든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책 쓰기 강의에 등록하고 목차를 구성했다. 책을 쓰려고 하니 내 인생 전체를 깊이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서러웠던 일,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일, 부끄러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난 40년 동안 살아온 내 인생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되는 일이 절반 이상이었다. 미흡하고 부족한 과거의 나를 만나 눈물을 흘리는 나날이 이어졌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 속에 맺힌 감정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이 먼저였다. 한 챕터 쓰느라 몇 날 며칠 속앓이하며 울다 잠든 밤이 많았다. 지난 시절 암울하게 살았던 가여웠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안타깝고 불쌍해서 많이 울었다.
‘너 참 힘들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냈구나.’
과거의 나를 만나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 힘들었던 감정을 하나씩 풀어냈더니 한 문장, 한 문장 솔직한 나의 과거를 글로 써 내려갈 용기가 생겼다.
책 쓰기 강의를 듣는 내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은 바로 글 쓰는 행위가 곧 타인을 돕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읽고 도움을 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내가 쓰는 행위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고 힘을 주고 도움을 주는 행위라는 의미를 부여하니 글을 쓸 때마다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며, 남을 돕기 위해 이 어려운 걸 해 내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블로그를 열어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누군지도 모를 내가, 마찬가지로 누군지도 모를 그 누군가에게 혹시 도움을 줄지도 모를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나쁜 말을 내뱉으며 남편과 다투었던 나의 경험이, 실수로 교통사고를 낸 나의 일상이, 덤벙대느라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천만다행으로 되찾았던 에피소드가, 누군가를 도울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글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불평하고 투덜대며 지나고 말았던 내가 더 이상 나쁜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메시지를 뽑아 글로 쓰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루했던 나의 일상이 내 글을 읽는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큰 의미가 되겠다는 기대를 하게 해 주었다. 누가 쓰라고 억지로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 내 삶을 과시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돕는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자, 마음속에서 글을 쓰고자 하는 동기가 솟아올랐다.
“글 쓰는 삶을 응원합니다.”
책 쓰기 강의에서 문장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의 클로징 멘트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매번 응원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일상의 부정적인 면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삶의 태도도 배운다. 글을 쓰고 책을 쓰겠다고 공언한 이후로 나는 매일 꿈에 다가가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제야 나는 잘 먹고, 잘 웃고, 잘 사는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느낌이다. 글쓰기로 빛나는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