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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임줌마 May 08. 2024

부탁과 존중.. 힘드신가요? 어머니!!

연애 1년 차였나? 어버이날에 꽃바구니를 사들고 남자친구(지금 나랑 같이 사는 사람) 집에 놀러 갔었다.

어머니는 외출하셨고, 아버님만 계셨다. 아버님께 꽃바구니를 드리니 고맙다고 한마디 하시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내가 맘에 안 드시나?라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했었다. 아버님은 단지 말 수가 없으신 거고 특히나 어머니가 안 계시면 아들하고도 대화가 없으신 분이셨던 거다. 결혼 15년 동안 아버님만의 표현으로 날 위해 주시는 걸 느끼면서 살고 있어서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시간 : 1년이 안된 따끈한 이야기! 

장소 : 우리 집 (정신없이 저녁 준비 중 울리는 카톡 소리)




큰아이가 하교 후 학원으로 가기 전 잠깐의 시간이 뜬다. 지금은 중학생이 되어서 나름 관리를 하는 건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간식으로 라면 2개에 밥 말아먹던 아이다. 위(胃) 대한 아이기 때문에 잠시의 공복을 이겨내지 못한다. (내 딸이 확실하다! 나도 그렇다!) 

퇴근하자마자 얼른 간단히 먹여서 학원에 보낸다. 


아침도 등교와 출근 준비에 전쟁통이 따로 없다. 우리 집 강아지만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모두 바쁘다.

저녁 시간도 아침만큼 바쁘다. (우리 강아지가 부러운 시간이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서 손 씻을 겨를도 없이 바닥에 있는 아이들이 놓은 물통부터 벗어놓은 외투 그 외 아침의 흔적들을 주우면서 싱크대로 간다. 동선을 효율적으로~

(3살도 안다! 물건은 제자리에 놓는다는 것을.. 우리 집 3명만 모르나 보다)


주말에 끓여서 소분해 놓은 국을 냉동실에서 꺼내 데우는 동시에 반찬을 옮겨 담는다. 운이 좋으면 설거지 통이 깨끗하지만 대부분 아침에 먹은 식기구들을 설거지하며 스피디하게 움직인다.

난 성격이 급한 편이라 빠른 속도로 착착 막힘이 없어야 한다.

그런 나만의 흐름을 깨는 순간이 있었으니.. 

"카톡"...

여러 번 울리면 엄마들 단체방 이겠거니 하고 나중에 정독하지만 한 번만 울린다. 왠지 그 톡이 누군지 알 것 같아 신경 쓰인다.. 다시 싱크대로 눈을 돌리지만 자꾸 신경 쓰인다.. 결국 하던 일을 멈추고 카톡을 확인한다.

어머니다! 앗... 이번에도 내가 졌다.

사진 한 장이 전송되어 있을 뿐 그 어떤 내용이 없으시다.


항상 이럴 땐 성격 급한 내가 먼저 전화를 건다. 꾹 참아도 봤는데 난 그게 잘 안된다.

어머니는 미끼를 던졌을 뿐, 난 결국 그 미끼를 문다.

내용은 항상 별게 없었다. 

이번엔 절대! 기필코! 먼저 여쭤보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고 대한 신경을 끈 채 다시 상차림에 집중을 한다.

(다짐까지 해야 할 일인가... 답답이)


그렇게 둘째 저녁 먹이고 나면 세탁기 돌리고, 돌리는 동시에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먼지 털기를 한다. 기계가 자기 일을 할 동안 난 밀대로 바닥을 민다. 강아지가 있어서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 청소기로 휘이휘이 돌리고 싶지만 나 역시 층간소음이 싫어서 최대한 조용히 먼지만 모아 본다.

먹은 저녁 치우고, 다시 설거지하고, 다 된 빨래 널고, 먼지 턴 빨래 개고, 정리하고, 큰애 학원에서 돌아오면 다시 저녁먹이고(아까는 간식이다..) 애들 숙제나 학교 준비물 등등 체크하고 나면..

난 두유하나 입에 물고 소파에 앉는다. 멍 때리는 것도 잠시.. 이제 씻어야지.. 거울 속 내 모습은 스모키 화장을 한 듯 마스카라가 번져 있지만 뭔가 육퇴의 끝이 보여서 이제 좀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소파에 널브러져서 다시 핸드폰을 들어다 본다. 어머니 카톡엔 여전히 사진만 존재할 뿐 설명이 없으시다.

그 사진은 다름 아닌 아버님 요실금 패드 사진이다. 아버님이 전립선 수술을 하셨는데 그 이후로 패드 사용을 하신다. 초반 몇 번은 나에게 아버님 요실금 패드 주문을 부탁하셨다. 처음엔 부탁이었다. 부모님 일이고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부끄럽거나 민망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렇게 사진만 보내시고 내가 주문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눈치껏 해왔던 그간의 내가 밉다. 어머니의 당연함에 화가 난다.

나도 말로만 듣던 '읽씹'을 어머니를 상대로 해보았다.


그 주 주말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마트로 가는 길이었다.

패드 사건을 남편한테 말했던 터라 내용을 알고 있던 남편이 어머니께 여쭤본다.


"엄마, 무슨 사진만 보내고 내용을 말을 안 해?"


"아 그거 아빠 거 요실금 팬티 다 떨어져 가거든"


"그러니까 그럼 그렇다 말을 해야 알지"


"봤으면 궁금한 사람이 전화해야지."


... 15년째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무개념 논리.




나는 어머니에게 은행 직원이자, 카드사 고객센터 직원이고,

주민센터 직원이며, 쇼핑몰 직원, 다산콜센터 직원이다.

때로는 어머니댁 반찬을 처리하는 잔반 처리반이고, 

어머니가 주문하신 물품을 근처에 사시는 시어른들께 배달하는 배달기사 이기도 하다.

귀찮은 게 아니다.. 나만 시켜서 뿔이 난 것도 아니다..

다만.. 정말 딱 하나만 바람이 있다면..

제발 강요가 아닌 부탁을, 무시가 아닌 존중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어머니 제발요...!!


이번생은 글렀나요? ㅎㅎ

(다음생에는 무개념으로 한번 태어나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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