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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21. 2024

이사의 기억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고,
차가 달리는 내내
눈물이 멈추 질 않았다.



"나 이사 가야 할 것 같아.."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고 겨우 말을 꺼냈다.

뜬금없는 이야기에 깜짝 놀란 육공주는 이내 아쉬움을 쏟아냈다.


남편은 회사생활을 계속할 것 인지 부모님 사업을 물려받을 것인지 오랜 고민 끝에 부모님께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언젠가는 가지 않을까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는데 남편회사에 생긴 이슈로 인해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라졌다. 우리 가족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기대도 됐다.


이사를 갈 때까지는 1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 시간이면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든 곳을 떠나야 한다는 건 '아직 먼 일이니까' 라며 외면하고 싶었다.


틈틈이 이사 갈 집과 아이들이 다니게 될 유치원을 알아봤고 새롭게 시작될 우리의 미래를 그렸다.



필요 없는 짐을 정리하면서 추억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넓은 베란다에서 여름에는 아이들에게 수영장을 만들어 줬고 겨울에는 양푼에 눈을 퍼와 눈사람도 만들고 소꿉놀이도 했다.


남편이 직접 달아주었던 식탁등, 아이가 여기저기 붙여놓은 스티커.. 방 한쪽 구석에 자기 키를 표시해 둔 큰 아이의 연필자국을 보니 그날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매일 익숙하게 지나다니던 집 앞 횡단보도와 단골 소아과. 겨울을 기다리게 만들었던 붕어빵 트럭..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


이별의식을 치르듯 천천히 헤어질 준비를 했다.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육공주와 동네친구들


이사 전날 우리 집에 다 같이 모였을 때에는 분위기가 우울해지는 게 싫어 아무 말이나 떠들었다. 밝은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늘 함께했던 티타임처럼 평범한 듯했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만남을 기약해야했다.


어수선한 짐들 사이에서 다 같이 웃으며 사진을 찍었고 서로를 한 번씩 꼭 안아주었다. 이제는 정말 안녕이었다.


많이 추웠던 12월의 어느 아침, 짐이 모두 빠진 텅 빈 집안을 둘러보고 있으니 정말 떠나는구나 실감이 났다.


치열한 하루를 살았던 우리는 이제 완전히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이삿짐을 실은 차가 떠나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뒤따라서 출발을 했다. 친구들에게 작별 메시지를 전송하는 손끝이 떨렸다. 담담하려 애썼던 마음도 조금씩 무너졌다.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가 설레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고 낯선곳에 내려와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7살 5살을 코앞에 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내 삶의 한 페이지와의 이별이었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고 차가 달리는 내내 눈물이 멈추 질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


::: 사십춘기를 맞이한 너에게 :::
마흔 즈음 찾아왔던 우울증은 빨리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었다.  
우연히 읽었던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제는 나로 살기 위한 '꿈'을 꾸고 있다. 지난 나의 이야기, 독서와 글쓰기로 삶이 변화된 이야기들을 천천히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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