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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14. 2024

홀로남은 유부초밥


그냥 회사에서
재워달라고 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
잠이라도 더자게



남편이 불쌍했다.
참고 참았던 짜증도 터졌다.

남편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회사의 연구원이었다.

일이 많은 날에는
별을 보며 출근했다가
별을 보며 퇴근하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내가 자고 있을 때 집에 왔다가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하는 바람에
얼굴을 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입사할 때 가입했던 야구 동호회는
퇴사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애증만 가득 남아있는 유니폼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채
옷장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둘째를 낳은 지 50일도 되지 않아
큰아이가 폐렴으로 입원을 했다.
바쁜 남편은 휴가를 낼 수 없었고
친정엄마가 둘째를 돌봐주셨다.

4개월 뒤 큰아이가
두 번째 입원을 하게 됐고
부모님이 도움을
주실수 없는 상황이라
작은딸까지 데리고
병원생활을 하게됐다.

큰아이를 돌보고 있을 때
옆침대에서 기어 다니는
둘째 아이가 위태로웠다.

급한 대로 거즈수건을 엮어
아이 허리에 묶고
침대에 연결해 놓았다.

잠깐이라도 눈을 돌리면
둘째는 가장자리로 기어갔고
그때마다 묶어놓은 수건이
아이를 구했다.

지루한 하루에
아이들이 종일 가지고 놀던
장난감 뽀로로펜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아이가 퇴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몸에도 이상이 생겼다.

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약을 먹게 되는 바람에
둘째 아이의 모유수유는
7개월 만에 끝이 났다.



매일 저녁이면

앞에는 둘째, 등에는 샘 많은 첫째

아기띠를 두 개씩 매고

설거지를 했다.


밤이 되어 둘째를 재울 때면

큰 아이는 거실에서

엄마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둘째는 언니에게 치여

엄마에게 맘껏 안겨있지 못했고

너무 빨리 언니가 돼버린 첫째는

늘 사랑이 고팠다.


둘째가 울면

어느새 큰애가 먼저

달려오는 바람에

둘째는 늘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만 했다.


순하고 순했던 우리 둘째.

엄마 힘들까 봐 울음도 짧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기다리는 순간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기다림부터 배워야 했던

내 소중한 아기.


아이들이 자다 깨서 울면

남편이 잠을 설칠까봐

얼른 안고 거실로 나가 토닥였다.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첫째에게도 둘째에게도

남편에게도..

어느 하나 사랑을

듬뿍 주지 못했다.


시간이 있을 때는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키즈카페나 공원을

부지런히 다녔다.


큰맘 먹고

캠핑도 시작했다.


기분 좋게 나섰던 외출에서는

남편과 다투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캠핑장에서 짐을 풀 때부터

짜증 가득한 남편에게

"우리는 대체 캠핑을 왜 다니는 거야?

이럴 거면 그냥 집에 있어!"

라고 맞섰다.


함께 있고 싶었지만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공존했다.


남편과 대화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그만큼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예민해져만 갔다.


"아빠 퇴근하면 드리자"

아이와 유부초밥을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늦은 밤 퇴근한 남편은

잠들기에 바빴나 보다.


다음날 남편은 출근을 했고

식탁 위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유부초밥은

그 자리에 그대로였다.


유부초밥 한 개

집어먹을 여유가 없었던

내 남편.


우리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면서도

왜 그렇게 서운한 게 많았을까.


가장의 무게를, 육아의 고충을

서로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


이해를 하기도 받기도

버거운 날들이었다.


남편을 기다리던 유부초밥처럼

언젠가 나아질 날을 기다리며

또 하루를 보냈다.



-다음 편에 계속...


:::: 사십춘기를 맞이한 너에게 :::
마흔 즈음 찾아왔던 우울증은 빨리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었다.  
우연히 읽었던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제는 나로 살기 위한 '꿈'을 꾸고 있다. 지난 나의 이야기, 독서와 글쓰기로 삶이 변화된 이야기들을 천천히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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