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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den in AD May 26. 2024

더 심즈(The Sims) 평행이론

더 심즈(The Sims)는 2000년대 초반 일렉트로닉 아츠(EA)에서 출시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지금은 무려 4탄까지 나왔고 2026년에는 더 심즈5 출시 예정이라니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하는 동안 게임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은 듯하다.


내가 처음 심즈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의 일이니, 첫 출시 당시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것이다. 심의 인생을 설계하고 플레이하는 짜릿하면서도 약간은 관음적인 방식에 나는 서서히 중독되었다.


기억을 더듬어보건데 학업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 뒤에는 항상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심즈를 했던 것 같다. EA 게임즈에서 부지런하게도 확장판 게임과 업그레이드된 게임을 출시해 줬으므로 나는 지겨워질 틈도 없이 심을 키워냈고 또 사망에 이르게 했다.


심즈를 하며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고, 컴퓨터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가며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심 일생을 완성하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심즈와 함께 보냈다.


시간이 한창 흐른 후, 어느 날 오빠가 읽어보라며 한 게임 커뮤니티 글을 보여줬다. 한 네티즌이 쓴 심즈 나라별 플레이어 특징과 관련된 글이었는데, 그중 한국인들이 게임하는 방식이 웃프게도 내가 그동안 플레이한 방식과 굉장히 유사해서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일단 한국 플레이어들의 특유의 ‘종특(종족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신기한 게임이라 생각하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심이 원하는 걸 들어준다.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파티도 하며 즐거운 유흥의 나날을 보내는데, 이러한 플레이가 슬슬 지겨워질 때쯤 어느샌가 본인도 모르게 스스로의 삶을 심의 그것에 투영해 게임을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보상 유예: 내일의 영광의 위해 오늘의 고통을 감내하는 삶


소위 말하는 보상 유예(Delayed Gratification)의—가치 있고 장기적인 보상을 얻기를 바라며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쾌락의 유혹에 저항하는 것—심리가 각자의 삶에 너무나도 깊게 스며든 나머지 즐기자고 하는 게임 안에서도 심의 인생을 이 보상 유예 원칙에 입각하여 철저히 설계·관리한다는 것이다.


어느새 심은 노동의 굴레에 갇혀 쳇바퀴 돌듯 집-직장-집을 오가며 얼마 주어지지도 않은 여가 시간을 오로지 경력개발에 투자하고 근검절약하여 저축해 승진과 부의 축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위해 갈아 넣는다. 그리고 그 삶이 다음 세대의 심에게 대물림된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상상 속의 즐겁고 행복한 삶을 마음껏 펼쳐보라는 창작자의 취지와는 달리 어느 순간 게임이 현실의 삶을 압도하고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사람들은 ‘심즈 세계관’에 빠지게 된다.


내가 그랬다. 아무리 게임을 열심히 하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도, 내 심이 커리어 최고 목표를 달성하고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해 편안한 여생을 누리게 되어도 마음 한켠에는 공허함이 몰려왔다. 세대에 세대를 거듭해도 나는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플레이하고 내 심들은 누구 하나 다른 인생을 누리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은퇴 후 여생을 잠시나마 금전적으로 여유 있게 보낸 후 저승사자(Grim Reaper)를 맞이했다.


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죽음의 신이 찾아와 데려가는데, 웃긴 건 계속 플레이할 다른 심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도 심세계는 계속 흘러간다는 것이다. 심이 죽고, 그 자리에 묘비가 세워지고, 그래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이웃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계속 살아간다. 게임 플레이어는 더 이상 컨트롤이 불가해진다. 지켜볼 수밖에.


심이 죽고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보려고 게임을 한 적도 많다. 앉아서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의 흐름만 찬찬히 주시할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속으로 결론을 짓는다.


굉장히 우울한 게임이다.


그 이후론 더 이상 심즈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심세계를 살고 있다. 나는 심즈 세계관을 고스란히 나의 현실로 끌고 왔고, 내 인생 하루하루가 마치 심에게 주어진 퀘스트(임무)를 완수하는 나날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나는 나를 ‘플레이’하고 있다. 이렇게 즐겁지도 않은 인생을 살다가 늙어서는 은퇴를 하고 모아둔 돈과 연금으로 연명하다가 결국 죽음의 신이 찾아올 것이다—물론 사고사든 자살이든 신이 나를 훨씬 더 일찍 찾아오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내 인생은 어쩌면 내가 그토록 수없이 플레이해 온 심들의 삶과 ‘평행이론’ 관계에 있는지 모르겠다. 평행우주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내 또 다른 자아들의 삶이 지금 나의 삶과 다르지 않듯, 나를 지금껏 거쳐간 많은 심들의 삶 또한 내 인생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평행우주를 살고 있다. 그리고 인생은 ‘무’에서 ‘유’로 탄생하여 다시 ‘무’로 돌아가는 덧없는 과정의 반복이다. 인생에 의미는 없으며 모두가 똑같이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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