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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U Tris Aug 31. 2024

흰수염고래

희망의 노래

 ‘작은 연못에서 시작된 길’

 나는 노래를 불렀다. 가파르게 꺽이는 절벽 위, 아슬아슬하게 그 끝에 서서 찬란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바다 옆을 지나가는 도로에서 조금 벗어나 차를 세우고 절벽 끝을 향해 걸어왔다. 그 길은 한적하여 지나가는 차량이 없었고, 절벽에는 더더욱 나를 제외하곤 누구도 없었다.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노래했다.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마 넌 혼자가 아니야’

 그것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전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흰수염고래를 떠올리며 나는 웃었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노래를 부를 운명이었으리라. 나의 목소리에서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렸다. 나의 노래가 바다 위로 퍼져나갔다.


 바다 옆 작은 오두막에서 아버지와 둘이 사는 한 남자이에게는 꿈이 있었다. 흰수염고래를 보고 싶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아이는 매일 아침 바다로 향하는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를 껴안고 고래를 보고 싶다고, 자신도 배에 태워달라고 떼를 썼지만 언제나 아버지는 아이를 달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결같이 위험해서 안된다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한번도 아빠가 배를 타고 나갔다가 다쳐서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를 향한 아이의 신뢰도는 절대적이었기에 그저 고래가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CD 플레이어의 버튼을 눌러 멈췄던 노래를 재생시켰다. 

 ‘바다로 바다로 갈 수 있음 좋겠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수 년 전에 만난 한 아저씨가 들려준 흰수염고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때 아저씨가 했던 묘사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 

 다 그린 그림에는 하얀색 수염이 산타 할아버지 마냥 자라 있는 고래가 있었다.

 만족한 아이는 밖으로 나가 뛰어다니며 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렸다.

 바다 위의 사내는 그물을 던졌다. 그리고 그것을 회수했을 때, 작은 물고기 몇마리가 엉켜 있는 것을 떼어냈다.

 아기 물고기는 잡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기 위해 그것들을 방생하고, 다시 적당한 곳에서 그물을 던지고 수거했다. 

 작은 배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한 그의 사투는, 한 아이의 아버지인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자신이 잡은 물고기 뿐이라 그는 오늘도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사내는 멀리서 거대한 무언가가 물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직감으로 그것이 고래임을 깨달았고, 아이가 항상 불러대는 흰수염고래와 관련된 노래와 고래 보고 싶다고 배에 태워달라는 말들이 떠올랐다. 

 저 고래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아이가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사내는 배를 고래 쪽으로 몰았다.

 그 날, 한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분명 기뻐할 이야기를 전해주지 못한 채로 수장되었다. 

 아이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러나 항상 오던 시간에 오시지 않았고, 더 늦은 시간에도 오시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아이는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렸고, 그의 소식은 결국 2주의 시간이 흘러서야 바다가 전해주었다.

 자신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배의 파편이 해변가에 안착했다. 집으로 돌아온 강아지처럼 자신을 칭찬해달라고 하는듯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아이는 그 파편을 차마 옮기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물끄러미 지켜보다 집으로 돌아갔다.

 간단한 식량과 장비를 챙겨들고 아버지가 쓰던 것과는 비교되는, 작고 초라한 배 위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와 어렸을 때 타고 놀았던 것처럼 배를 작동시켰다. 터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가 나아가기 시작했다. 

 함께 배를 타고 놀던 시절에는 넘어갈 수 없었던 가상의 한계선을 넘고, 아이는 바다로 바다로 나아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식량이 전부 떨어지고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지만 바닷물을 마셔봤자 더 목마를 뿐이었던 아이는 배 위에 늘어져 있었다. 

 배의 엔진은 이미 죽었고 그저 파도 치는 대로 휩쓸릴 뿐이었다. 배가 엎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적일 뿐이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싫어 외면했고, 그것이 확실시 되었을 때 아니는 도피했다. 그러나 죽음 직전에 몰리자 아이는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눈물을 흘리며 배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푸른 바닷물을 바라만 보았다.

 슬슬 눈이 감기기 시작할 때, 아이는 바닷물이 너무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으나 해는 쨍쨍했다. 의아해 바닷속을 더 자세히 들여보자 아이는 그 어둠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았다.

 거대한 고래가 아이의 밑을 지나 그의 앞에서 자태를 드러냈다. 아이는 감탄하며 고래를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더 크게 감탄했다.

 고래는 한마리가 아니었다.

 10마리는 넘는 고래들이 바다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와 해수면을 뚫고 비상했다. 하늘의 구름에서 흰수염고래들이 내려와 아이에게 인사했고 아이는 반갑게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멀리서 흰수염고래의 등에 타 있는 아버지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이.

 바다와 하늘을 누비는 흰수염고래들이었다.


 나의 노래가 퍼져나가고 그것이 바닷속 고래들에게 전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러기를 희망한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희망을 가져야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지키자. 




 ♪ "흰수염고래" - 윤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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