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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U Tris Sep 14. 2024

삶과 죽음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짧고 어리석은 가치관

 “삶에는 이유가 없어, 이유가 없기에 최종적인 목표가 없기에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는 거야.”

 이 말을 여러 군데에서 듣게 된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듣게 된 것은 정확히는 읽은 것인데,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작가의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하며 동시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삶에는 이유가 없다.

 이 말은 깊이 공감하여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삶에 이유가 있다면, 즉 목표나 목적이 있다면 어째서 모두가 같은 방향을 지향하지 않는 것일까.

 바람직한 삶의 방향, 목적지, 종착지가 존재한다면 대부분의 이들은 그 방향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이 삶에 이유가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나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이 반박한다면 아마 그 이유를 모르기에 그러지 못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그걸 몰라서 아무렇게나 살아간다면 삶에 이유가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삶의 목적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것을 쫓지 않는다면, 그냥 없다고 받아들이는 게 맞지 않을까?

 삶에 이유가 없다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렇기에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잘 모르겠다.

 그게 왜 그렇게 연결되는지.

 이를 설명하는 글도 있겠지만 잘 모르겠다.

 사실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좀 웃기다고 생각한다.

 행복하기 위해 인생의 일부를 희생한다면, 그 불행의 순간은 행복하지 않기에 나의 목적에 모순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행복을 위해 살아가려면 대부분의 이들은 희생의 시간, 불행의 시기를 겪을 것이고, 이는 그저 모순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찌 생각하는가?

 삶에 이유가 있지도 않고 행복하게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저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기에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하기에, 죽기에는 이 감정이 아깝기에 죽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지금이 불행하다 느낀다면, 내가 정해둔 선을 넘는다면 죽음을 서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위험한 발상이고 사상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 믿는다.

 현재가 불행하다면 살 가치가 없는 생이다.

 죽음의 상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물론 지금의 나는 적당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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