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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작은 화분

by 글바트로스

꽃집

창가에 이마 맞대고 서서

발걸음 쉬이 떼지 못하고

넋 놓고 바라보아도,

언제부턴가

꽃을 사지 않는다.


가위로

꽃을 잘라대다가

"이제, 그만 잘라요. 너무, 아파요!"

자지러지는 환청에

소스라쳤던 순간부터,

더 이상

잘린 꽃 사지 않는다.


그날부터

나를 위해서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도

허리 잘려나간 꽃

사지 않는다.


이른 새벽

빛바랜 꿈처럼 추락하는 낙엽,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소리

애끓는 속 울음처럼 후벼와

말수 적은

너의 창가에

작은 화분 두고 온 날.


오가며

수없이 삼켰던

드러내놓고 못 한 말,

봄날 청보리처럼 흔들려도

결코 꺾이지 말라는 수줍은 기도,

화분 흙속에 곱게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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