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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바트로스 Nov 08. 2024

까까머리

이자벨이 앙제(Angers)에서 왔다.  

공공 아파트에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자신 일처럼 기뻐한 그녀. 

새로운 거주지에 입주한 나를 축하하러 온 것이다.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진 모습. 불과 몇 달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꿈꾸는 것 같은 눈빛과 희고 고운 피부는 5월 장미처럼 빛났다. 

프랑스식 양볼 부비는 인사가 그다지 불편하지 않는 그녀에게,

“분위기가 다른데? 아침에 핀 백장미 같네, 좋은 일 있어?”

“남자친구 생겼어”

“정말 멋진 일이네! 축하해. 뭐 하는 사람이야? 몇 살이야? 어디서 만났어? 언제부터야?” 

한국적 통념 중요 순서대로 속사포처럼 쏟아진 질문에 잠깐 멈칫하던 그녀,

“대학원 다닐 때에 베이비시터 했던 집, 애들 아빠야. 나보다는 17살 많은 회사원이고.”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적으로 멍해졌던 나,

“이혼했어? 아이들은 몇 명이고?” 

“아니 아직. 세 명이야.”  

   

갑자기 날벼락 맞은 기분이다.

얼마나 서로 깊이 사랑하고 또 행복한지를 강조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런 추임새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내 모습에 꿈꾸듯이 말하던 그녀도 조용해졌다.

표정 관리가 안 될 뿐 아니라, 립서비스도 못하는 캐릭터인 나. 

“왜 그런 남자를 사귀는데? 너보다 훨씬 나이도 많은 데다가, 남의 남편이야. 애들도 3명이나 되고. 너는 남의 가정을 깨뜨리는 거야. 이건 옳지 못한 사랑이야. 강의실에서 너를 처음 본 순간, 너무도 아름다워서 내가 수줍어질 정도였어. 지금도 눈부실 정도로 예뻐. 뭐가 부족해서 그런 사람을 사랑해?” 

이 말이 끝나는 순간,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화난 그녀의 얼굴을 직면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뿔난 그녀의 목소리도. 

우리 둘은 처음으로 격렬한 언쟁을 했다.

그녀의 첫 번째 반박은, 

“베이비시터로 갔을 때, 그들은 이미 사이가 좋지 않았어. 직접적인 원인이 내가 아니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 집 애들은 무슨 죄야? 너 때문에, 결손가정에서 자라게 되잖아? 아직 이혼 전이니까, 당장 네가 멈추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연이은 그녀의 반박,   

“네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아. 서로 사랑하지 않고, 싸우는 가정환경이 아이들 교육에는 더 나쁘다고 생각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미래야. 행복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고. 네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너, 지금 대단히 무례한 거야!”  

둘 다,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말싸움을 계속했다.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아무런 말없이 꺼내두었던 옷들을 다시 가방에 챙겨 넣고, 그녀는 떠났다. 나도 붙잡지 않았다.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즐거운 주말을 함께 하기에는.     


반가운 봄바람처럼 왔던 그녀, 겨울 회오리처럼 떠났다. 

그녀가 떠난 뒤에도 멈추지 못하고, 한동안 혼자 중얼댔다. 어릴 적 옆집에 살던 실성한 그 아지매처럼. 

잔뜩 뿔난 마음으로, 그녀와 그 남자에게 온갖 비난의 화살을 퍼부어댔다. 

얼마나 웃기는 말들을 하고 있는지 전혀 감을 못 잡을 정도로 화가 났던 나. 한국에서 보고 듣고 자랐던 윤리강령을 프랑스아가씨에게 읊어댄 무자격 도덕 교사가 나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날이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도저히 아파트 안에 있을 수가 없었던 나.

거리로 나섰다. 갈 데가 없다. 이야기하고픈 프랑스인도, 한국인 유학생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걸었다. 길 밖을 향해 창가에 서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뜻밖에 환한 미소다. 화답하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약속하고 왔나요?”

“아니요.”

“다행히, 다음 예약손님까지 1시간 여유가 있어요. 어떻게 해 드릴까요? 특별히 원하는 스타일이 있나요?”  

“아니요. 그냥 짧게 잘라주세요, 1cm 남기고요.”

“1cm만 잘라요?”

“아니요. 1cm만 남기고, 잘라주세요!”

이런 대화가 이미 세 번이나 오고 갔다. 결국 헤어디자이너가 거울 속의 나를 향하여, 1cm만 자르는 것과 1cm만 남기는 것, 그 차이를 보여주는 시물레이션 실랑이까지.

소통 완료 후, 드디어 완성된 까까머리!

“얼랄라 아!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예뻐요!”   

“나쁘지는 않네요.”     


처음으로 프랑스 헤어숍에서 커트한 날이었다. 

그동안은 미용학교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에게서 머리를 잘랐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훨씬 저렴했고, 의사소통도 원활했다. 다만 불편한 점은 인원이 충족되어야만, 찾아오는 특혜였다.   

낯선 헤어숍 의자에 앉을 때까지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까까머리.

거울 속의 울화로 일그러진 못난 모습이 정말 싫었다. 다시마주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 못난이를 당장 지워버리고 싶었다. 울컥 충동의 결과였다, 까까머리는. 

전혀 다른 이미지. 새로 태어난 듯했다. 다들 놀랐다, 변한 내 모습에. 더러는 못 알아보는 이도. 처음 1달 동안은, 아주 만족했다. 확실하게 변한 모습이 좋았다. 덩달아 가벼워진 마음도. 머리에 와닿는 바람의 시원함도. 머리 감고 난 후, 손질하지 않는 것도.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에서 올라오는 불편한 기류. 

‘이자벨에게 너무 심하게 말했나?’ 하는 의문이 심층 한 귀퉁이에서 움텄다.  그녀와 단절된 채로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에 싹텄던 그 의문은, 생명력 강한 잡초처럼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진심 어린 염려로 충고했다는 명분이 줄어든 그 빈터에는, 쑥쑥 자라나는 의문뿐 아니라 후회도 덩달아 싹텄다. 

프랑스에서 그저 이방인이라는 내 신원을 망각했다는 불편한 자각이 들었다. 착한 사마리안처럼 따듯이 보살펴 준 그녀 인생의 울타리를 예고 없이 넘어간 것 같은 느낌도. 결국 내가 불어대는 낯선 휘파람소리에 그녀는 멀리 달아나버렸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의 외침대로, ‘무례한 나’를 깨닫고 인정하는 데에 필요했던  오랜 시간.


1년간 둘 다 침묵했다, 끊어진 실처럼.

표면적으로 외적인 일상에 충실했고, 내적으로도 아주 분주했다. 

한국윤리강의로 참사를 겪은 후에 엮어내는, 내적 모노드라마로.

수도 없이 되돌려본 그날, 서로 낯선 의견 마찰로 일으킨 말들의 홍수. 

초기에는 다시 보기 할 때마다, 백발백승으로 이겼다. 미리 저울추를 내 쪽으로 당겨 놓았기 때문이다. 점차로 무승부로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윤리적인’ 내가 대부분 승리했다. 심층 속에서 일어나는 이 게임에서, 나의 임의대로 ‘비도덕적인 옷’을 입은 그녀가 이길 확률은 극히 낮았다. 

서로 다른 의식이 일으킨 언쟁원인을 그녀 탓으로 돌리는, 황소고집 목소리,

“사랑하는 맘, 진정한 우정으로 하는 충고도 못 알아듣나? 철딱서니가 없는 걸까? 그 남자보다 훨씬 나은 남편감이 줄 선 25살에. 그 미모에, 그 학벌에, 그 직장에.”

그날이 떠오를 때마다 통상적인 한국 어매처럼 중얼댔다.    

  

까까머리, 단절된 우정, 둘 다 원상 복구하는 데에 걸린 1년.

늘, 조심했다. 새내기 내과 의사된 소피아, 훨씬 나이 많은 재혼남과 결혼 소식을 전할 때도 축하 인사말만 했다. 

동향 유학생이 17살 연하남과 사귀며 갈등을 겪을 때도. 여름방학에 귀국하는 2달 동안, 훈수대신에 그녀에게 필요했던 공간인 아파트만 제공했다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노력의 결과다. 내 주관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침묵했던 시기. 편향적인 내 의식의 실체를 몰랐다. 내가 옳지만, 그 누구와도 다투지 않기 위하여 침묵했다. 

내적성찰보다는 타인의 행위를 평가하는 오지랖 의식을 감지 못했던 시기다. 그 무분별한 의식이 무례한 행동으로 귀결된다는 인식도.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한국적 윤리 의식으로, 이자벨을 공격했다는 것도. 한국에서 호흡처럼 들이마신 통념이, 나의 심층에 뿌리 깊은 나무처럼 버티고 있다는 인식도.      


이 무례한 실체를 알아차린 것은 귀국한 후다. 

합당한 신랑감 조건에 태클 건다고 구박받은 날, 화난 이자벨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도 내 감정에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아 뿔났던 날, 그녀에게 용서를 청하고 싶어진 나. 의식 속에 은거하던 오지랖 윤리선생을 과감히 몰아내고서, 되찾은 예의로서 사과편지를 썼다.

그녀의 부모님 주소로 보낸 편지에 회답이 왔다, 새 주소에서 발신한. 

마침내, 그와 결혼한다는 소식이다. 편지와 함께 동봉된 사진 속에서 두 소년을 중심으로 양옆에 친구 이자벨과 남편이 행복하게 환하게 웃는 모습. 셋째는 전처가 키운다는 설명과 함께 4명이 티베트로 신혼여행 갈 예정이라고 했다. 나도 합류하길  바라며, 동의한다면 왕복 비행기 표를 보낸다고 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동서양의 의식충돌로 언쟁한 후, 잘려나간 인연으로 포기했던 시기.


나보다 어린, 그러나 더 성숙한 그녀로부터, 여행초청장을 받은 날. 

티베트에서 합류하자는 초대는 고맙지만 사양한다는 완곡한 회답을 보냈다.

다시 만나보고 싶음보다도 더 분명했던 것은 누구에게도 더 이상 빚지고 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귀국 후에도 여전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여행하고픈 여유가 없었나? 그 이유는 분명하게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절대로오지랖 훈수두지 말자.

그 다짐처럼, 나를 바꾸기는 그리 쉽지 않다. 내가 ‘옳다는 의식’을 버리는 작업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쓰레기통을 비우듯이, 완전히 버렸다고 착각한다. 평소에는 은둔하는 주관의 실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심하는 순간, 주관은 레드라인을 넘어서기가 일쑤다. 특히나 전혀 다른 주관을 만나는 순간, 내가 더 옳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은 충동으로 주장하는 무례한 말들.

오늘도, 그 엎질러진 물을 닦는다. 고개 숙여 엎드린 채로. 

갑자기, 그날의 낯익은 얼굴이 떠오른다. 

그 까까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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