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사진을 찍다.
2024년 3월 중순, 바람은 다소 불지만 따뜻한 날이었다.
다음 날부터 꽃샘추위가 온다고 해서 엄마랑 부지런히 마당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지난해부터 엄마가 영정사진을 찍고 싶다고 얘기한 터였다. 서울에 있을 때 사진관에서 예쁘게 찍을까 생각도 했었지만, 우리는 시골집 마당에서 찍기로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이 50이 됐을 때 손수 지은 집이다. 벌써 40여 년 전이다. 엄마는 지금도 그때 얘기를 간간이 하신다. 골목이 좁아 트럭이 들어오지 못하자 아버지가 리어카로 매일 벽돌을 실어 날랐다는 이야기. 집짓기 위한 대출 보증인이 필요할 때 이웃 아저씨가 도움을 줘서 고마웠다는 이야기. 당시 동네에서는 처음으로 집에 목욕탕을 지어서 농활이나 의료봉사 온 학생들이 우리 집에 묵기를 좋아했다는 이야기 등등......
집을 짓던 당시의 기억은 나에게도 남아 있다. 내가 ‘목수 삼촌’이라고 부르던 목수 아저씨와 그의 조수 아저씨, 그리고 아버지가 집을 짓는 현장을 뛰어다니며 놀았었다.
집을 짓기 전 아버지가 직접 그린 설계도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얘기해 보라고 했었던 기억도 있다. 그림도 잘 그리고 손재주도 좋았던 아버지의 설계도를 우리는 무조건 좋다고 했었다. 설계부터 터파기, 벽돌 한 장, 기와 한 장 모두 아버지가 직접 올린 집이라 그런지 엄마는 집에 대한 애정이 그 누구보다 큰 것 같다.
엄마와 아버지는 집을 가꾸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약 300평 정도로 대지가 넓은 터라 과일나무도 많이 심고, 꽃나무도 많이 심었다. 지금도 가을이면 감, 대추를 따서 여기저기 택배를 보내는 게 엄마의 낙이다. 아니 이제는 당신이 거동을 못하는 터라 감, 대추 딸 때만 되면 자식이며 손자들이 언제 시간이 나는지 안달하는 애물단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3월 중순, 마당에는 엄마가 심어놓은 산당화와 수선화가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찍은 엄마의 사진. 언젠가 엄마가 가시는 날, 손수 심은 꽃이 가득 핀 마당에서 웃고 있는 모습으로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꽃처럼 예쁘고 행복한 나날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