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제가 뒤에서 오다가 너무 보기 좋아서요. 따님들이 부축하고 가는 걸 보니까 우리 어머니 생각나네요. 빨리 나으시고 건강하세요.”
서울에 머물던 어느 날, 저녁운동을 하던 중이었다.
엄마는 휠체어를 밀며 걷기 연습을 하고, 나와 동생은 엄마가 혹시나 넘어질까 봐 옆에서 나란히 걷던 중이었다.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부러 다가와 말을 건넨 것이다.
매일 하루 2~3번씩 동네를 걸으며 운동하다 보면 이렇게 한 마디씩 덕담을 해 주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다들 연로한 부모님들이 있다 보니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나 보다.
낯 모르는 이들이지만, 이렇게 따뜻한 한 마디를 듣고 나면 왠지 금방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낯가림이 심한 우리는 이전에는 모르는 사람과는 말 한마디 섞는 것도 꺼려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과도 따뜻한 말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 참 많다.”
엄마가 요즘 들어 자주 하는 말이다.
실제로 엄마와 병원을 다니고, 운동을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병원에 갈 때 택시에 싣지 못하는 휠체어를 맡아주고, 택시 타고 내릴 때면 직접 엄마를 부축해 주던 아파트 경비 아저씨. 그리고 우리의 발이 돼 준 택시 기사님들이 대표적인 분들이다.
엄마 모시고 병원을 다닐 때 우리는 주로 택시를 이용했다. 요즘 택시 참 친절하고 많이 좋아졌다. 택시를 타고 내릴 때 시간이 오래 걸려 미안해하면 늘 “천천히 하세요.”라며 얘기해 주고 직접 내려서 승하차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난 택시불안증이 심해 잘 이용하지 않았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알게 해 준 분들이다.
엄마와 함께 이동할 때 거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도와드릴까요?”라고 묻기도 한다. 작은 도움이 절실할 때 그분들이 건네는 손길은 가뭄의 단비 같을 때가 많다.
얼마 전 기차로 이동하던 때도 그랬다. 장거리 이동 때는 캐리어도 함께 가져가야 하는 터라 늘 셋이 같이 공항이나 기차역으로 이동해 한 사람은 짐을 챙기고 한 사람은 엄마를 챙겼었다. 같이 가지 않더라도 배웅은 꼭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기차시간이 동생 출근시간과 맞물려 엄마와 캐리어를 모두 내가 책임져야 했다. 그래도 휠체어 서비스를 이용하면 역무원이 도와주기 때문에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나 보다. 플랫폼 이동 후 기차 탑승 때는 혼자서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엄마, 내가 얼른 짐 먼저 올려놓고 와서 엄마랑 같이 올라갈게.”
짧은 정차시간,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지 얘기하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아저씨 한 분이 엄마 휠체어를 힐끗 보더니 우리 옆으로 와서 섰다. 그렇게 옆에 가만히 서 있더니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다가와 얘기했다.
“내가 짐을 들고 올라갈게요. 어머니 모시고 타요.”
휠체어와 캐리어가 있는 것을 보고 도와주려고 일부러 우리 옆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탑승이 시작되자 다른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탑승을 주도했다. 다른 승객들은 기꺼이 자리를 내주고 휠체어를 잡아주는 등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도움 속에 아무 어려움 없이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낯가림도 있고 의심도 많은 나는 지금도 낯선 사람들을 많이 꺼린다. 하지만 지금은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 뜬금없이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이 적어졌다. 가끔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낯설지만 친절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달라진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도움을 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얘기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