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종합병원은 종합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일까?
며칠 전 휴대전화의 갤러리 앱을 정리하다 수술 전 엄마와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지금보다 더 살도 찌고, 허리와 무릎도 제법 꼿꼿하게 세우고 웃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인공고관절 수술은 하지 않아야 했을까?’하는 것이었다.
당시 엄마는 골반뼈가 골절된 상태였다. 의사에게 ‘고관절 골절이 아닌데도 해야 하나?’ 물었지만 해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관련 지식이 없는 우리로서는 대학병원 교수가 하는 판단이니 당연히 맞겠지 했다. 무엇보다 짧은 진료시간 후 빠르게 진행되는 입원과 수술 설명 등...... 우리가 뭔가 고민하고 어쩌고 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따라가게 되는 시스템은 뒤늦은 후회를 낳기도 했다. 물론 지금 그런 후회가 맞는 것인지, 그것도 모를 일이다.
6주 간의 침상 요양을 숱한 의문과 시행착오, 그리고 새로운 경험치를 쌓으며 보낸 후 드디어 수술 후 첫 진료일이 되었다. 그 결과에 따라 엄마가 침상을 벗어날 수 있는지가 결정될 터였다. 그 6주의 시간 동안 우리는 엄마와 함께 즐거운 상상을 하며 견뎠다.
“엄마, 다 낫고 시골집에 가서 동네사람들한테 잘 걷는 모습 보여주는 생각을 해 봐. 같이 걸어서 놀러 다니고, 마당에 풀도 매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수시로 이런 희망을 불어넣으며 침상 운동을 시키고, 한 술이라도 더 먹게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결과를 받는 날이 된 것이다.
긴 기다림과 다양한 검사 후 담당 교수는 우리가 원하던 답을 주었다.
“수술 경과가 괜찮고, 골반뼈도 잘 붙고 있습니다. 앞으로 골다공증 치료 계속하면서 침상 벗어나서 조금씩 운동 시작하면 됩니다.”
우린 희망에 차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집 안뿐 아니라 밖에 나가서도 걷는 운동을 할 수 있고, 그렇게 근육이 회복되면 걸어서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삶의 함정은 우리가 모르는 새 우리 앞에 덫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부터 처음에는 침상에 앉아서, 그다음에는 침대를 벗어나 보조기를 잡고 걷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발걸음을 떼는 순간 엄마가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엄마, 왜? 왜?”
조심스레 옆에서 함께 걷던 우리는 깜짝 놀랐다.
“무릎이 너무 아파!”
이번엔 무릎이 문제였다.
나이 든 분들 대부분이 그렇듯 엄마 역시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몇 달에 한 번씩 연골 주사를 맞으며 지내 왔었다. 그런데 인공고관절 수술 후 갑자기 무릎이 이전과는 강도 자체가 다르게 마치 뭔가 찌르는 것처럼 발걸음을 떼면 깜짝 놀라게 아파 걷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일단 동네 정형외과에 가서 검사하고 치료를 받았다. 주 1회 3주 동안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우린 주사를 맞으면 통증이 완화될 것으로 믿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운동도 함께 했다. 그렇게 3주 간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수술을 받은 대학병원에 관련해서 문의했지만, 무릎은 담당하는 분이 다르니 따로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후 다시 대학병원에서 검사하고 진료도 받았다. 결론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공 고관절 수술과의 인과관계가 있지 않을까, 같은 다리에 또 수술을 하는 것이 향후 어떤 영향을 줄까 궁금증이 많았지만, 6개월이 지나면 수술해도 괜찮다는 얘기 외에 대학병원에서 담당교수들은 결코 종합적인 의견을 주지 않았다.
환자의 몸은 하나로 이어져 있지만, 병원에서는 이를 각 부위로 구분해 각각의 의견만 제시했다. 늘 그 점이 아쉬웠다. 물론 신체 각 부위의 특징이 다르겠지만, 연계된 종합적 의견을 듣고 싶은데, 늘 따로 얘기 듣고 각각의 얘기밖에 들을 수 없었다. 사람을 위한 시스템이 아닌, 시스템을 위해 사람이 적응해야 하는 사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종합병원에서 종합적이지 않은 산발적 진료를 받아가며 무릎과의 씨름을 새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