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모르는 길은 더 멀다.
9살쯤 됐을 때던가? 6살 많은 큰언니와 고모집에 심부름을 간 적이 있었다. 고모집은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동네라, 근처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산길과 들길을 한참 걸어가야 했다. 언니와 나 모두 처음 가는 터라 여기가 맞나 걱정하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힘들고 불안하고...... 도착할 수는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멀었다.
그렇게 한참 걸어 마침내 고모집에 도착했다. 사촌오빠도 만나고, 고모도 만나고, 간식도 먹으면서 잠시 머물다 오던 길을 되짚어 왔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갈 때는 그렇게 멀던 길이 돌아올 때는 별로 멀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심부름 내용이 뭔지는 까맣게 잊었지만, 당시 오가던 길의 그 느낌과 감정은 지금도 오롯이 남아있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모르는 길은 더 멀게 느껴진다는 걸.....
갈 때는 이 길이 맞나 싶고,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몰라 멀게만 느껴지더니, 올 때는 어떤 모퉁이에서 어찌 돌고, 돌고 나면 무엇이 있는지 알기 때문인지 금방 도착한 것 같았다..
고관절 수술 후 엄마와의 시간은 모르는 길을 가는 것과 같았다.
6주간의 침상 요양도 무사히 마치고 운동만 열심히 하면 예전처럼 걸을 수 있다는 희망에 차 있던 그때, 엄마는 무릎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무릎 연골이 닳았어도 이전에는 연골주사를 맞으면 걷는데 무리가 없었는데, 수술 후 주사치료도 소용없이 뼈끼리 부딪히는 고통에 엄마는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결론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고관절 수술 후 최소 6개월은 지나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6주간의 침상 요양으로 근육이 많이 빠졌는데, 6개월을 또 그렇게 보낸다면 엄마의 근육은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거기에 고관절 수술을 했던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빨리 수술하고, 빨리 재활을 하는 게 맞겠다 싶어 무릎 인공관절을 잘한다는 전문병원을 찾기로 했다.
문제는 무릎만이 아니었다.
수면장애 때문에 자다가 한 번씩 호소하던 호흡곤란의 빈도가 잦아지고 있었다.
처음 자다 깨서 온몸의 힘이 빠지고 숨을 쉬기가 힘들다고 하더니, 어느 날부턴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증상을 호소했다. 그럴 때면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엄마의 온몸을 주무르고 동동거리며 증상이 가라앉길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 그럴 만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얘기뿐이었다.
혹시 기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싶어 영양제 주사도 맞아보고, 예전에 저혈압이었던 적이 있어 그 때문인가 싶어 다리를 올리고 사탕도 먹여보고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그저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려야 했다.
나는 방송작가를 하면서 의사들과 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했는데, 참 그때는 왜 그런 경험들도 소용이 없는지.
결국 여기저기 주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해 무릎 수술 잘한다는 의사부터 찾아가 진료를 받고 수술계획을 잡았다. 기다리는 동안 다리 근육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해서 누워서 할 수 있는 운동, 앉아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가며 뭐라도 해야 했다.
고관절 수술 마치고 운동하면 걸어서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던 엄마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희망을 잃어 갔다. 평생을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의 아파트에서 갇혀 있다시피 한 생활도 엄마에게는 고통이었다.
매일 온갖 약을 먹고(고지혈증과 심혈관계 예방약까지 포함), 매일 골다공증 주사를 맞고, 운동도 하고 치료도 하는데 걷지 못하고, 밤에는 수면장애까지......
치료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일이 터져 호전되지 않는 상황.
돌아보면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와 우리는 이 모퉁이를 도는 게 맞는지, 돌면 막다른 길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모르는 길을 가는 기분으로 지내왔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밤은 점점 길고 고통스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