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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재원 Sep 01. 2024

책은 나를 소환한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를 읽고...

 족히 몇 백 권은 되어 보인다. 제주도로 가면 내 방이 사라지는 터 그동안 사 모았던 책 중에 십 분의 일만 남기기로 결단했다. 이별을 앞둔 책들을 그러 모아 박스에 넣으면서 새삼 한편으로 기울어진 취향에 헛웃음이 났다. 자기 계발, 경제경영, 주식 및 부동산 투자... 이런 류의 책이 절반이 넘었다. 정작 주저하다 집 한 채 사지도 못했는데, 주식 투자로 까먹은 돈보다 관련 책을 사는데 더 많은 비용을 치렀는데,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 재테크도 제 때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따름이다. 연신 한숨만 쏟아내며 짐을 꾸렸던 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25평짜리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일 년간 부대끼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아이들 마스크라도 벗고 친구들과 뛰놀게 해 주고픈 마음에 결정한 제주도 일년살이었는데 서울로 돌아오니 오미크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 방이 다시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텅 빈 책장을 한 권, 한 권 다시 채워 나가는 중이다. 책 수집벽이 도진 셈이다. 


 붉은색과 푸른색 막대로 빽빽한 차트를 분석하는 대신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책에 눈길이 간다. 숨죽이며 읽었던 <7년의 밤>과 <종의 기원>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밝은 달>과 <멀고도 가까운>이 전해 주는 다정한 먹먹함으로 기울어지는 요즘이다.


 학창 시절 특별히 독서에 애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만큼 나이 먹고 책에 집착(?)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시류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조바심, 있어빌리티에 대한 로망, 마치 이 책이 나를 구원해 주리라 착각하게 만드는 서점 특유의 공기... 이유를 들자면 끝이 없지만 너무 많은 자극에 쉽게 피로해지고 세상사가 점점 더 시시해져 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간절히 달성하고픈 목표나 과업을 잃어버린 지금, 적어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가까스로 허무에서 벗어나 위로와 충만함을 느낀다.


가족을 잃고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해 뒤로 걷는 한 청년의 모습에서, 20여 년간 홀로 어둔 방에서 써 내려간 맑디 맑은 문장에서, 그리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혼돈 속에서 호기심을 갖기를 권유하는 작가의 한마디를 되새기며 마음속 지평을 한 뼘씩 넓혀가고 싶다. 책은 지난날의 나를 반추하고 오늘의 나를 소환한다. 그리고 앞으로 마주할 좀 더 그럴듯한 나를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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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부터는 이번 책에 대한 짤막한 소회입니다.)


 “…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중 한 친구가 혀를 쯧 차는 겁니다. 그 순간 저 녀석과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누군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할 때 다른 쪽을 쳐다보는 , 그런 행위는 힘이 셉니다(p215)”


 책을 쓰는 일이란 그 본질이 ‘증여’이고, 우리는 지금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언젠가 읽어야 할 책을 산다고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과 동 떨어져 보이는 선생님의 주장에 “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고 이래서 일본에 가면 아직도 화폐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구나 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어느 순간부터 벌린 입을 다물고 고개마저 끄덕이는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건 아마도 책은 공공재이고 도서관에는 마녀가 있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신념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둘로 갈라진 극단의 세상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대화와 타협의 동력마저 상실한 채 침묵합니다.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의 의견이 고지식하고 한 편으로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지하고픈 마음이 드는 건 책과 사람을 사랑하는 그분의 진정성 때문입니다.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기꺼이 외골수를 자처하며 끈질기게 소수 의견을 고수하시는 덕분에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에서 오늘까지도 종이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오늘도 여기와는 다른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줄, 자그마한 ‘틈’을 찾아서 도서관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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