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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재원 Oct 24. 2024

행방불명

 "인간에게는 행방불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행방불명의 시간 -이바리기 노리코> 中에서


 누구나 인생이라는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가기' 버튼을 눌러야 하는 때가 있다

 세 아이의 틈바구니에서 교직 생활을 이어 오다 번 아웃된 아내

 승진을 앞에 두고 가십거리에 휘말려 이직을 고민하는 친구

 서빙과 배달을 병행하며 쉼 없는 일상을 사는 딸아이 축구교실 선생님


 발열된 핸드폰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일단 전원부터 끄고 충전기를 꽂는다

 아침마다 등교 전쟁을 벌인 후 암막 커튼을 내리고 대 자로 뻗은 그녀

 퇴근 후에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추스르는 40대 가장

 늦은 밤 돼지곱창에 소주 한잔을 털어 넣으며 숨 쉴 구멍을 찾는 청년


 "나를 한번 더 봐주세요!" 아우성치는 4,000만 유튜버 세상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무한 자유와 책임을 강권하는 각자도생의 시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좇기 위해 ENTER 키를 쳐 내려가다가도

 숨 고르기를 하기 위해 PAUSE 키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BACKSPACE 든 DELETE 든 뭐라도 눌러본다

 자꾸만 재촉하는 마음속 달음박질을 멈추려 선선한 바람에 몸을 맡긴다


 닳고 닳아 사라지기 전에 자취를 감추었던 지난한 나날들

 출구를 찾지 못해 머물렀던 어둑한 공간

 멈춰야 했던 시간을 통과하여 눈을 뜨니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

 주저앉은 몸을 일으켜 거울 속의 나를 찬찬히 살펴본다

  

 여전히 미덥지 못한 구석 투성이지만

 이제는 그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본다

 자기 연민과 반추의 돌멩이를 주워 들어 힘껏 던진다

 깨진 유리 틈 사이로 슬며시 스며든 한가닥 빗줄기를 따라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부딪히기를 반복한다

 꿈쩍도 않던 유리벽에 하나하나 금이 가고

 비로소 눈부신 햇살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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