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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재원 Nov 19. 2024

각자의 서사

 오랜만이야.

 

 그러게... 너무 연락이 뜸한 거 아냐?


 차 한 잔 줄까?


 차는 무슨... 간만인데 소주 한잔 해야지?


 나... 이제 술은 좀..


 뭐야? 다시 교회라도 나가는 거야?


 글쎄... 굳이 말하자면 반대편에 가까울 것 같은데.


 뭔 소리래.. 야, 재미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일루 와서 앉아봐.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너 왜케 망가졌냐?


 내가? 어때서?


 니 배를 좀 봐. 너무 관리 안 하는 거 아냐? 흰머리는 또 왜 이렇게 많아? 야, 염색이라도 좀 하고 다녀라.


 살은 빼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 염색은 머리카락 빠질까 봐 못하겠구. 그러고 보니까 넌 아직 턱선이 살아있네. 풋.


 야, 인생이 풀리려면 자기 몸부터 챙겨야 하는 거야. 이 녀석 다시 빡세게 굴려야겠구먼.


 그런 너는 요즘 좀 어때?


 나야 늘 그렇듯 빠릿빠릿하게 살지. 일하느라, 애 키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잘 지내는 거 같아 다행이야.


 그런 넌 좀 어때?


 난... 쉬엄쉬엄 가는 중이야.


 뭐라구? 안 그래도 부어 보이더니 너 어디 아픈데 있어? 아님 로또라도 맞았냐?


 아니, 그런 건 아니구 남은 시간이 절반도 안 남았는데 어떻게 살면 좋을까... 뭐, 그런 고민하면서 지내.


 한가한 소리 하고 있네. 야, 니가 애가 몇인데 지금 놀 때냐?


 제대로 놀 줄이라도 알면 좋겠다. 그냥 일 좀 줄이고 책 읽거나 걸어 다니고 시간 되면 글도 쓰고 그렇게 살아.


 어이구? 이제 사업 접고 작가 하시겠다? 야, 십칠 년이야, 십칠 년. 지금까지 쌓아온 게 아깝지도 않냐?


 사업은 계속해야지. 근데 지난 시간 동안 내가 흐릿해진 느낌이야. 이제라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난 뭘 잘할 수 있는지 찾아보려고.


 너... 지금 나 원망하는 거야? 야, 너 나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느긋한 소리나 할 수 있을 거 같아?


 원망은 무슨... 너도 내 일부인걸. 더 이상 쫓기듯 살고 싶지 아서 그래.


 야, 잘 생각해 봐. 니가 머리가 좋아? 사교적이길 해? 사업가로는 꽝이잖아. 내가 등이라도 떠밀어줘서 그나마 여기까지 온 건 알지?


 맞아. 네 덕분에 이 정도라도 올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근데, 조바심 내며 사는 건 이제 그만하려고.


 니 나이가 몇인데 벌써 쉬어?! 안 되겠다. 나랑 같이 피치 좀 올리자!


 넌, 이렇게 사는 게 좋니?


 ... 무슨 소리야?


 난 숨이 막혔어. 어둔 생각들에 밀려서 낭떠러지에 매달린 채 버티고 견디는 거, 이제 그만할래.


 이것 봐라, 결국 내 핑계 대고 있네.


 말했잖아. 너도 내 삶의 한 부분이라고. 그것도 아주 중요한.


 근데... 왜 날 모른 척하는 거야?


 솔직히 네가 사라져 좋으면, 간절하게 기도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냐. 긴급하고 중요한 순간에 여전히 난 널 의지하고 있는 걸.


 말이 나온 감에 하나 더 묻자. 너 요즘 왜 교회 안 나가냐?


 난 네가 자랑스럽거든.


 그건 또 무슨 동문서답이냐?


 말 그대로야. 이제 네가 두렵지 않아. 도리어 내 인생의 훈장이라고나 할까? 풋. 애초에 내가 하나님께 매달린 건 너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는데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어져서.


 그러니까 니가 필요해서 하나님을 찾았는데 이제 필요 없으니까 교회도 안 나가신다? 그게 무슨 신앙이냐?


 맞아.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내 믿음은 잘못된 데서 출발했어. 두려움이라는. 이제라도 바로 잡으려고 해.


 야, 너 나중에 지옥 갈까 봐 무섭지 않냐?


 무섭지... 근데 그게 무서워서 남은 생을 내 의지대로 살지 못할까 그게 더 두려워.


 그래서 니 뜻대로 사는 게 고작 걷고 읽고 또 뭐라 했더라... 쓰는 거야? 넌 치열하게 사는 걸 잊어버렸어. 그러니까 성취감도 없고 인생이 권태로운 거야.


 네 말이 맞아. 전부 다 가질 수는 없는 거니까.


 야, 한번 생각해 봐. 눈부셨던 너의 10대 시절을!!


 그때 생각하면 골방에서 교과서 찢어가면서 울부짖었던 기억뿐이야. 그때는 왜 태백에 철광석이 나고 영월에 텅스텐이 나는 걸 달달 외우는 데 목숨을 걸었는지...


 그 덕분에 니가 원하는 학교도 가고 직장도 들어갈 수 있었잖아! 니가 공부 말고 할 줄 아는 게 있었어? 초등학교 때는 단소 소리가 안 나서 수업 끝나고 남아서 연습했으면서.. 니가 그린 데생 보면 발로 그린 줄 알겠다.

 

 학원과 과외로 점철된 시간이었지.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 정도 자본 투입하면 이 정도는 했겠지.


 꼭 그렇게 자조할 필요 없어. 난방도 안 되는 사무실에서 전기난로 틀어 놓고 야근하던 때 기억나?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셨던 차디찬 새벽 공기... 인생을 그렇게 살아야지. 꽉꽉 채워서 충만하게!


 충만함이라... 그래 가끔 그 시간이 그립더라. 가슴 뛰는 삶을 살리라 하루하루 마음먹었는데 언젠가부턴가 뜀박질이 버겁더라고. 이제는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도 돌아보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하... 난 정말 모르겠다. 훗날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나 이만 간다.


 잠깐만.


 ??




 그동안 고생 많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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