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 술자리에서 '엠지' 세대를 '엠제트' 세대라고 칭했다가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80년 1월생이니 나도 슬쩍 MZ 세대에 숟가락이라도 얹어 볼까 주저하던 차에 깨끗이 X세대임을 자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대 구분이 중요한 건 아닐 터... 하지만 이제 30대 초중반에 접어든 90년대 생 청년들의 일상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불과 십여 년의 인생을 더 살았을 뿐인데 너무 많은 조건들이 청년 세대에게 불리한 쪽으로 바뀌어 버렸다.
십 수년 전 함께 일할 직원들을 뽑을 당시만 해도 우리 회사는 경험은 일천하지만 열정만은 넘치는 젊은 조직이었다. 당시만 해도 내 나이가 20대 중반이었고 또래의 직원들을 채용했으니 적어도 물리적인 나이만큼은 IT 스타트업 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함께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 가는 걸 지켜봐 왔다. 회사 규모가 기대했던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지는 못해서 최근 몇 년 간은 퇴사하는 직원을 보충하는 차원에서만 새 직원을 뽑았다. 코로나를 전후해 뽑은 직원들은 MZ 세대에 해당했고 이전에 채용했던 직원과는 달리 그들은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며칠 전 친구를 따라 연극 한 편을 봤다. 허름한 건물 계단을 오르니 십여 개의 의자와 테이블 한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비슷한 숫자의 관객과 배우가 어우러져 한 시간가량 공연이 끝나고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흔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청년 세대의 고민이 이어졌고 이제 더 이상 청년이 아닌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적어도 그곳에 함께한 청년들에게 결혼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점점 더 설 자리가 좁아지는 각자의 무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생존을 고민하는 그들에게 결혼, 아니 연애마저 가닿기에는 너무 멀리 있어 보였다. 인생을 좀 더 살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난감했다. "너무 조바심 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겨우 내뱉은 한마디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내내 찜찜했다. 그럴듯한 조언을 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대학에 들어가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던 추억에 소환되어서 감상에 젖었던 걸까? 맥주 자리에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무심코 "짠하다"는 말을 뱉고 말았다. 어떻게든 수습해야겠다는 조바심 때문이었을까. 모임을 파할 때까지 쭈뼛쭈뼛 서있다가 연출을 맡은 분께 티켓과 맥주값을 계산하고 싶다고,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정 그러시면 티켓 두 장을 사서 연극반 후배들 보러 오게 해 주세요."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포옹 한번 하자고 청했다. 엉거주춤 그녀의 등을 두드리고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쫓기듯 공연장을 떠났다.
언젠가부터 돈 몇 푼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내 몸을 정성껏 주물러 주신 마사지 관리사님, 소리를 줄여 달라는 부탁에 아예 라디오를 꺼버리고 단잠을 청하도록 배려해 주신 택시 기사님... 그분들 호의에 만 원짜리 한 두장으로 감사를 드리고는 내심 스스로 뿌듯해하곤 했다. 이번에는... 그랬으면 안 되는 거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마음이 서걱거리는데 난데없이 짠한 사람이 돼버린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감히 들춰보기 조차 무섭다. 청년의 어설픔은 배움의 과정일 수 있지만 어른의 서툼은 그가 살아온 궤적을 보여준다.
착잡한 마음에 패드를 덮으려다 검색창을 연다. "연극 맥주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