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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Dec 24. 2024

나의 다정한 산타 이야기

잊고싶지 않은 크리스마스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면 잠든 나와 동생의 머리맡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들을 두고 갔다. 어린 나는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선물을 들고 부모님에게로 달려가 산타 할아버지가 올해에도 선물을 줬다며 자랑을 하고 곧장 동생을 깨워 머리맡에 선물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내 오두방정에 동생은 늘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비몽사몽인 채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열어봤다.
내 선물은 예쁜 인형이기도 했고, 보석함이기도 했다. 해마다 내가 갖고 싶어 한 선물을 가져다주는 산타 할아버지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간 날이면 동생과 나는  하루 종일 선물을 안고 잔뜩 기뻐했다. 내가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자랑했을 때 친구들은

' 그거 다 엄마 아빠가 가져다 놓는 거야. 산타는 없어. ' 이야기하곤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우리 집을 포함한 다른 집에도 산타 할아버지는 늘 다녀갔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어린 마음에 산타가 없다는 말에 상처를 받고 엄마에게 정말 산타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냐고 물었을 땐 엄마는 당연히 아니라고, 산타 할아버지가 밤늦게 왔다 간 거라고 말하며 달래줬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의 어느 날 밤, 크리스마스 당일 새벽에 내 방에 들어와 몰래 선물을 두고 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이후에 당연히 산타를 믿지 않게 되었고 부모님이 가져다 두는 선물이라는 걸 알았어도 내색하진 않았다.  부모님도 얼핏 우리가 산타가 없다는 걸 아는 것 같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남동생과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부모님은 우리의 순수함을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남동생이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해의 겨울에 엄마는 이제 크리스마스 선물이 없을 거라 했다. 너희는 다 컸고, 산타 할아버지는 어린이들에게만 다녀가는 거라면서. 그 해의 크리스마스는 내 머리맡에 선물이 없었던 첫해였다.  



내 선물은 물론 남동생에게도 크리마스 선물이 없을 게 뻔할 걸 알았던 나는 크리스마스 전날 용돈으로 남동생이 좋아할법한 작은 선물을 샀고 직접 포장을 했다. 새벽녘에 일어나 조심조심 남동생의 방에 선물을 가져다 두고서는 기뻐하는 남동생의 얼굴을 보고 싶어 이른 아침부터 거실에 모른 척 앉아 동생을 기다렸다. 동생을 기다리던 그날 아침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던 마음과는 다른 설레는 마음을 느낀 날이었다.
처음으로 남동생의 선물을 준비하며 어렴풋이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이미 동생도 산타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어김없이 기뻐하며 선물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 순간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선물을 준비하며 소중한 사람이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는 게 부모님에게도 가장 큰 선물이었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 이십 대 후반이 된 어느 날의 크리스마스이브,
결혼 이후 첫 크리스마스이브에 남편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퇴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꽃을 사 왔다.
남편은 '이미 내가 제일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니까 꽃만 사 왔다' 는 말을 덧붙였고
나는 웃으며 ' 선물이 마음에 안 드는데 환불해야겠다! ' 장난을 쳤다.
꽃을 받아들며 불현듯 한동안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잊고 싶지 않았지만 잊고 있던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당시를 떠올리며 밤중에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크리스마스 때마다 어떻게 내가 갖고 싶은걸 다 알고 선물을 했냐 물으니 내가 크리스마스 전부터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가 00을 선물로 주셨으면 좋겠다'

라며 그 누구도 잊을 수 없게 대놓고 소원을 빌곤 했단다.
그렇게 간절하게 받고 싶은 선물이 있었던 어린 날의 내가 문득 그리워지던 순간이었다.
엄마에게 그래도 나는 크리스마스에 기억할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이 있어 다행이라고,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설레는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의 엄마 덕분에 생긴 마음인 것 같다고.
크리스마스마다 나의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자 했던 부모님처럼,
나도 훗날 만날 나의 아이에게 다정한 산타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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