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 3일 차 아침, 전날 방충망만 쳐 두고 문을 열고 잠들었다. 이날 묵은 숙소에 투숙객이 나 혼자뿐이라 그 어떤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을 온전히 느꼈다. 가을의 선선한 날씨에 풀벌레 소리를 효과음처럼 들으며 잠드니 늘 악몽을 꾸는 난데 모처럼 간밤에 꿈도 꾸지 않았다. 개운하게 일어나 핸드폰을 보니 원래 조식이 없는 숙소인데 조식을 준비해 주셨다는 문자가 와 있다.
세 개의 하트까지 붙은 다정한 문자에 나도 감사하다고 답장을 보내고 밖으로 향했다. 전날 밤, 파고라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던 와중에 지나가시던 사장님이 혼자 온 내게 조식을 만들어줄까 한다는 말씀에 거절하지 않고 감사하다고 했다.
근데 웬걸, 무료 조식 치고 경주 떡과 복숭아, 사과, 계란에 과자들까지.. 딱 봐도 정성스러운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여행 중 마주친 이 순간이 정말 선물 같았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유독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이번 여행에서도 혼자 온 내 사진을 흔쾌히 찍어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식당과 카페에서 내내 내게 예쁘게 웃어주는 사장님들만 만나서 벅차게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 모든 기억이 떠오르자 내가 이 순간에 머물러있는 게 그저 감사했다. 바로 옆에는 풀벌레소리도 함께하고, 가까이의 불국사에서 종을 울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혼자 밥을 먹으려는데 어제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이곳의 마스코트 고양이가 나타나 내 발치에 앉아 누웠다가, 테이블 위에 올라앉아 그저 앉아있다. 밥을 먹으면서 한 번씩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혼자 술을 마실 땐 동네 강아지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곁에 함께했는데 오늘은 고양이가 함께다. 난 이곳에서 혼자였지만 늘 혼자가 아니었다. 이곳을 빛내주는 사랑스러운 존재들 덕에 나도 외롭지 않고 온전히 행복했다.
바나나우유에 붙은 문장을 한참 읽었다. '단지, 도전할 용기' 왕복 1000km를 혼자 운전해 여행을 오는 건 내게 엄청난 용기고 도전이었다. 결혼 이후 책임질 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혼자 이렇게 멀리 여행을 떠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살던 곳에서의 도피였기에 지금의 내겐 다시 돌아갈 용기가 더 크게 필요한 것 같다. 돌아갔을 때 이곳이 내내 그리울 것 같아서 작은 것 하나도 마음속에 새기며 여행하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내 여행이 절반은 더 남았다는 거다. 앞으로의 나는 또 어떤 예쁜 세상을 보고, 또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만날지 기대가 된다. 이날의 도전이 내 앞으로의 삶에 큰 용기를 가져다주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여행을 시작해야겠다. 오늘 하루의 시작이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