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
모두가 승자인 경기
여행에서 올라오던 길엔 경기장 의료지원 알바를 했다.
매년 가을 즈음 늘 해온 알바인데 강원도로 이사를 가면서 멀어진 탓에 작년엔 하지 못했는데,
마침 여행이 끝나는 날과 맞물리는 일자에 연락이 와서 알바를 하고 올라가기로 했다.
막상 하겠다고는 했지만 당일이 되자 오랜만의 의료지원 알바이기도하고 이번엔 어린 학생들의 경기라 나는 평소보다 더 긴장해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국 각지에서 온 정말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색색깔의 팀복을 입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니 더욱 걱정이 됐다.
아이들이 다치면 어떡하나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노심초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뒤의 관람석에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어서 부담이 더 컸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마냥 귀엽기만 하던 아이들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눈빛부터 숙련된 선수의 눈빛으로 돌변해서는 빛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며 멋지다고 느낀 것도 잠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부딪히고 넘어지는 모습에 나는
구급상자를 들고 자리에서 몇 번을 들썩거리며 아이들이 다칠까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마치 오뚝이처럼 바로 일어났다.
꽤 많이 넘어져 본 것처럼,
넘어져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내 뒤의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넘어질 때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무덤덤했다.
경기가 끝난 뒤 돌아온 아이에게 '괜찮아-?' 묻는 게 다였다.
그 모습을 보며 아마 부모님들 또한 그간의 경기들을 지켜보면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수없이 경험하며 이 자리까지 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넘어져 다칠게 두렵다면 처음부터 운동을 시키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그저 지켜보며 응원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듯했다.
경기 중엔 한 아이가 다른 아이와 부딪혀 우는 바람에 내가 곁에서 상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해당 팀 코치님이 ' 그런 걸로 울지 마! 울 거면 집에 가! '
호통을 치기에 조금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문득 얼마 전 책에서 읽은 새끼기린이 홀로 일어서 걷기까지의 여정이 생각났다.
새끼기린은 태어나자마자 바닥에 떨어져 고통을 느끼는데,
어미 기린은 새끼기린이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고 걷는 법을 익힐 때까지 발로 찬다.
새끼기린이 제대로 일어나 걸으면 그제야 잘했다는 듯 핥아준다.
아마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지금 내 뒤를 채우고 있는 부모님이 아이들이 넘어질 때마다 그저 지켜보는 이유도,
우는 아이에게 울지 말라 다그치던 코치님의 마음도.
스스로 더 성장하며 나아가길 바라는 어른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겠구나 생각이 들며 그곳에 있는 모든 부모님들과 코치님들이 존경스러웠다.
그 마음을 아는 듯 넘어져 울던 아이도 눈물을 슥 닦아내고 어느새 경기장 위를 달리고 있었다.
경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는 나는 아이들이 넘어질 때마다 안절부절못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아이들이라는 걸 알았다.
그날의 경기에서는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는 아이들의 모습 말고도 배려 넘치는 경기 매너도 돋보였는데,
몸을 쓰며 하는 경기이니만큼 어쩔 수 없이 수시로 부딪히고 혼자 넘어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다른 팀이어도 바로 옆에 있던 아이들이 일으켜 세워줬다.
걱정 어린 얼굴로 괜찮냐 물으며 다독이고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참 기특했다.
골을 향해 가던 중 한 아이가 넘어지자마자 바로 옆에서 달리고 있던 상대편 아이가 당연하게 멈춰 서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함께 달리는 것도 인상 깊었다.
혹시나 자신 때문에 넘어지기라도 했을 때에는 곧장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손을 건넸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상대팀을 다시 찾아와 넘어진 아이를 살폈다.
비록 옷 색깔은 다르지만 경기장 위에서의 아이들은 모두가 한 팀인 것 같았다.
경기가 끝나고 서로 인사를 하고 다독이고,
상대편 코치님께 인사를 하고 상대 코치님은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박수를 쳐주며 진심으로 격려했다.
숱한 경기를 봐왔지만 살면서 내가 본 경기 중 그날의 경기는 제일 멋진 경기였다.
그 경기에서 누가 이겼고 졌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진 아이들도 울지 않았고 부모님들은 충분히 잘했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메달을 목에 건 아이들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빛나는 경기매너를 보여준 모든 아이들이 우승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멋진 아이들과 아이들을 믿고 곁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부모님, 코치님들이 이끌어간 경기여서인지
처음의 내 걱정이 무색하게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탈하게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수없이 넘어졌고 넘어질 때마다 일어났다.
용수철처럼 빠르게 일어나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렸다.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넘어졌을 때 손을 잡아 줄 사람,
넘어졌을 때 일어날 수 있다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
넘어져도 내가 다시 일어날 거란 나를 향한 믿음 아닐까.
그 믿음을 갖게 되기까지 수없이 넘어졌을 아이들의 모습에 나 또한 큰 감명을 받았다.
나도 경기장에서 본 아이들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용기를 닮고 싶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넘어져야
다시 일어나 달릴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