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을 승(承)

이름이 이끈 길 위에서

by 성희승

1. 이름에서 시작된 이야기

성희승(星熙承). 어릴땐 또래 여자아이들 이름보다 어딘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유독 한자의 의미가 도드라졌고, 어딘지 모르게 시대적인 울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을 승(承)’ - 부모님이 넣어주신 이 한 글자엔 무엇인가를 잇고, 이어가고, 계승하라는 조용한 소망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 뜻은 긴세월을 돌아 고스란히 작업 세계에 스며들었다. 나는 ‘별’과 ‘빛’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와 오래된 기억을 표현하고자 했고, 작은 형상 속에 시간, 기억, 계보를 새겨 넣는 데 몰두해왔다. 그리고 이제야 문득 깨닫는다. 이 모든 여정은 유산(heritage)의 본질을 좇아온 길이었다는 것을.


2. 유산을 새기는 예술가

나는 오랜 시간, 빛과 어둠 사이, 우주와 인간의 경계를 탐색해 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붓과 소리, 형상과 기호로 그리는 일. 그것이 내 예술의 본질이었다. 별은 내게 있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기록이고, 잊힌 이름들의 흔적이며, 언젠가부터는 이 세계에서 사라져간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한 장치가 되었다. 나는 그것을 ‘별을 새기는 일’이라 불렀다. 그리고 나는 별작가라고 불린다.

그림을 그리고, 설치를 세우고, 소리를 쌓아가는 모든 행위는 결국, 기록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애도이자 환대였다. 무명의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이름 없는 이야기들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것이 나에게 예술과 유산의 공통점이다. 유산은 단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도록 새겨야 할 어떤 감정, 기억, 가치다. 나는 그 유산을 내 방식으로 ‘시각화’하고 ‘감각화’한다. 때로는 우주의 탄생처럼 광활하게, 때로는 한 사람의 내면처럼 섬세하게. 나는 ‘하이퍼-추상’이라고 명명하고 삼각 구조 안에 별과 기호, 감정을 중첩시켰다. 그것은 하나의 우주적 유산에 대한 상상이었다. 그리고 세대를 넘어 잇는 시각 언어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나의 예술은 기억의 미학이다. 잊히는 것들을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별을 새긴다. 이 행위가 한 사람의 예술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는 유산이 되길 바라면서.


3. 제도를 잇는 활동가

예술은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좋은 예술 뒤에는 그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들, 즉 제도와 시스템이 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작업실 안의 붓질만으로는 예술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갤러리케이 사태는 그 전환점이었다. 수백 명의 작가들이 정당한 대가도 받지 못한 채 계약서 한 장 없이 무너져 갔다. 그때, 나는 질문하는 사람이 아닌,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K미술연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예술가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연대. ‘창작자가 보호받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 법률, 제도, 언론, 교육, 정책 - 나는 익숙지 않은 언어들을 익히고, 그 언어를 예술의 편에 서게 만들기 위해 싸웠다. 작가는 사회의 약자다. 정산서를 요구하면 까다롭다 하고, 권리를 외치면 불편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예술은 사치가 아닌 저항이 된다. 나는 이제 예술을 둘러싼 조건을 바꾸는 일을 예술의 일부로 여긴다. 문화정책 연구자로서, 나는 정책이 현장과 연결되도록 고민한다. 현장의 언어를 제도에 옮기고, 제도의 숨은 구조를 드러내는 일. 예술가의 말을 ‘행정의 언어’로 통역하고, 국회의원들에게 작가들의 고통을 정치의 언어로 전달하는 일. 그 모든 과정은 때로는 고되고 느리지만, 예술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내가 이어가려는 유산은, 캔버스 위의 선과 색만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존엄하게,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 자체다. 제도를 잇는다는 건, 과거를 계승하고, 현재를 바꾸며, 미래의 작가들을 위한 길을 터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4. 세계를 잇는 교육자

예술은 선천적인 것이고 배울 수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예술은, 특히 감각과 질문을 기르는 방식으로는 누구나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 한다고. 나는 런던 골드스미스에서 공부하며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왜 그리는가’, ‘어떻게 세계를 다시 느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배웠다. 그 질문은 이후, 내가 한국에서 기초예술을 연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무언가를 '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감각을 다시 켜게 하는 교육. 기억을 해석하는 법, 경계를 넘어를 보는 시야,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게 하는 과정. 그것이 내가 믿는 예술교육의 본질이다. 서울과 런던, 파리와 광주,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나는 지구적 감각을 가진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낀다. 예술은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는 도구이자, 다름을 존중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예술교육이 단지 기술 습득을 넘어 시민성(citizenship)과 공존감각을 기르는 가장 근본적인 인프라라고 말하고 싶다. 이 점에서 나는 문화 간 대화, 세계시민교육, 지속가능성 교육이 결국 예술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예술은 언제나 다른 관점과의 조우를 가능하게 해왔고, 그 조우는 평화의 기초이다. 나는 아이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이 세상을 더 느낄 수 있도록 도왔고, 나 스스로도 세상을 다시 배우는 경험을 해왔다. 이제는 그 감각을, 정책과 제도, 국제사회로 확장할 시기라 생각한다. 교육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유산을 이어주는 일,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공동으로 상상하는 일이다.


5. 다시, 길 위에서

나는 늘 잇는 사람이었다. 작가와 제도, 기억과 제도, 세대와 세대, 지역과 세계, 예술과 삶을 잇는 길을 걸어왔다.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모든 경로는 어디로 향하는가?’, ‘내가 지나온 길들이, 다음 세대에게 어떤 다리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걷는 길은, 단지 개인의 여정이 아니라 더 넓은 미래를 위한 징검다리였다는 것을. 나는 예술을 정치의 언어로 번역할 줄 아는 사람이고, 제도를 현장의 언어로 다시 쓰는 사람이며, 다양한 감각을 가르치고 배우며, 세상을 다시 느끼게 하는 일에 오래 몸담아온 사람이다. 이제는 경험을 넘어 실천으로, 사유를 넘어 제도화로, 표현을 넘어 구조를 바꾸는 일로 나아가고자 한다. 나의 ‘승(承)’ - 그 한 글자는 이제 한 사람의 이름을 넘어선다. 그것은 기억을 지키는 마음, 세대를 잇는 다리,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응답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길 위에 다시 선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별을 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