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수도
파리는 오랫동안 “예술의 수도”로 불려왔다. 그러나 파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루브르나 오르세 같은 세계적인 미술관의 존재가 아니라, 예술을 시민의 권리로 제도화했다는 점이다.
1951년 프랑스 정부는 공공건축비의 1%를 예술작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하는 ‘1% artistique’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예술을 도시 미관의 장식물이 아니라, 시민 누구나 향유해야 하는 공공재로 규정한 획기적 조치였다. 이후 학교, 병원, 도서관, 지하철 등 생활 기반 시설까지 예술이 스며들었고, 파리는 “예술이 있는 일상”을 구현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파리는 문화 접근권(droit d’accès à la culture)을 시민의 기본권으로 선언했다. 이는 “예술을 누리는 것이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철학에서 출발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무료 입장일, 청년·학생 대상의 할인, 공공 도서관과 문화센터의 네트워크가 모두 이런 철학을 실천하는 장치다.
이와 더불어, 파리는 축제와 거리예술에도 힘을 쏟아왔다. 파리 여름축제(Festival Paris l’été), 거리예술 프로젝트,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은 시민이 예술을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자이자 창작 공동체의 일원으로 느끼게 한다.
파리 사례는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예술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치재’가 아니라, 시민의 삶과 권리 속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나아가려면, 예술을 제도적 차원에서 권리로 보장하고 일상에 확산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