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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Nov 07. 2024

생각의 사슬(CoT)로 챗GPT 글쓰기

회사에서 챗GPT로 글 쓰는 스피치라이터

**이 글은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 후속으로 나오는 책의 원고 초안입니다. 무단전재, 복사를 금합니다.**


90년대 중고등 학창시절을 보낸 분이라면 <한샘국어>, <수학의 정석>, <성문영어> 같은 책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중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라는 책도 있었죠. 이 책은 ‘과학적 연상암기법’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왔는데, 한 번 익힌 단어에서 새로운 단어로 생각을 넓혀가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해 출시 직후 화제가 됐습니다.      


이러한 연상 학습법이 효과적인 이유는 단어들 사이의 논리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지심리학적으로 우리 뇌는 하나의 커다란 정보를 통째로 암기하기보다는 큰 정보를 작은 단위로 나누어 연결해주면 시냅스라는 강화되어서 더 오래, 그리고 더 강렬하게 기억한다고 하죠.   

   

그런데 재밌게도 30여년 전에 처음 나온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오래된 생각방법은 최첨단 생성형 인공지능의 CoT(Chain-of-Thought)라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개념과 아주 많이 닮아 있습니다. CoT는 ‘생각의 사슬’이라는 이름 그대로, 복잡한 문제를 작은 단위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해결해나가는 프롬프트 기법입니다.

    


조금 복잡해 보이는 CoT는 어린 시절 부르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동요랑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이렇게 시작해서 ‘백두산’까지 훅 가버리는 그 황당한 노래 맞습니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말잇기 동요와 CoT 프롬프트는 하나의 생각이 계속 이어지면서 단계별로 발전된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CoT 프롬프트를 활용하면 ‘생각의 발산, 수렴, 정리’라는 글쓰기의 전통적 3단계를 무림의 고수가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돌파할 수 있습니다.

먼저 1단계인 '생각의 발산'에서는 마치 시장에서 신선한 요리 재료를 고르듯, 글의 주제나 목적에 맞춰 아이디어의 꼬리를 물고 자료를 많이 모으셔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의 좋고 나쁨을 섣불리 먼저 판단하지 않고, CoT를 활용해브레인스토밍 하듯 최대한 많은 생각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일단 자료가 많아야 취사선택할 수 있습니다.     


2단계인 '생각의 수렴'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 모아 놓은 아이디어들을 글의 목적과 주제, 그리고 대상에 따라 논리적으로 연결하고 검증된 틀 안에 정리하는 일입니다. 이때 검증된 틀이란, 보고서, 연설문, 보도자료 등 내가 속한 조직에서 오랜 세월 사용된 패턴을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보고서의 핵심 요소인 What(제목, 개요), Why(추진배경, 실행목적, 현황, 문제점과 원인, 유사사례 분석), How(해결방법, 진행계획), So What(기대효과, 협조사항, 최종 결심사항) 등의 순서로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글의 재료들을 배열하면 됩니다. 마치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리듯, CoT 기법을 활용해 글의 뼈대를 세우는 거죠.     


마지막으로 3단계인 '생각의 정리'는 일종의 퇴고 단계입니다. 싱싱한 재료도 푸짐하게 준비해 놨고, 레시피까지 숙지했다면, 이제부터는 요리의 간을 맞추듯, 글의 맛을 다듬고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입니다. 여기서는 새로운 내용을 찾기보다는 "이 방법이 실제 상황에 얼마나 적합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책인가?",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었는가?" “문장 길이와 호흡은 적당한가?”등의 날카로운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글의 흐름을 꼼꼼히 점검합니다. 필요한 경우 믿을 수 있는 가족, 친구 등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받아보면 좋은데요, 마땅한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챗GPT에게 이렇게 부탁해보세요. 그럴 듯한 분석결과를 불과 30초 안에 제시합니다.           

자, 지금까지 설명드린 ‘생각의 발산-수렴-정리’라는 3단계 글쓰기 과정을 염두에 두고, CoT를 실제로 적용해 질문과 지시를 쪼개보면 또 이렇습니다. 이때는 무턱대고 “H자동차 해외수출 분야 자기소개서를 써줘!”라고 대뜸 요청하지 말고, 질문을 여러 개로 잘게 나눈 다음, 하나씩 집요하게 묻고 단호하게 지시해야 합니다.

이게 좀 귀찮아 보이긴 하죠. 그렇다고 “원숭이는 엉덩이는 백두산”이라는 식으로 프롬프트를 쓰면, 챗GPT도 독자도 글의 흐름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번거로워도 이렇게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계속 물으면서, 생각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챗GPT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생각의 발산-수렴-정리’라는 글쓰기 3단계에도 충실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 단계를 잘 따르면서, 사람과 생성형 인공지능이 하나씩 함께 써내려간 글이 더 좋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말이고요.     


과거에는 사람이 모든 자료 수집과 정리 작업을 직접 하느라 글 하나 쓰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네이버와 구글이 나온 뒤로는 정보접근이 아주 쉬워졌죠. 지금은 챗GPT가 정보를 찾아내고 정리하고 배치하는 역할까지를 효과적으로 수행합니다.      


그러면 글쓰기를 할 때 사람은 앞으로 무슨 일에 집중해야 할까요? 정보 검색과 분류는 아닙니다. 정보의 배치는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이것도 챗GPT가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것은, 글을 쓰는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는 겁니다. 생각과 경험을 한 방향으로 엮어내고, 가지를 쳐내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생각의 사슬인 CoT 프롬프트가 바로 이제부터 펼쳐질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글쓰기 핵심역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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