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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Sep 26. 2019

건드리지, 건들일 수 없다.

<생활 속 맞춤법> 제3호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업계 베테랑에게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참 좋은데 오타가 몇 개 있더군요. 그야 수많은 단어를 적다 보면 생길 수 있는 흔한 실수죠. 그런데 '굳이'를 '구지'로 두 번이나 적은 건 성격이 다른 문제였습니다. 더군다나 글쓰기 관련 강의 컨설팅이었거든요. 신뢰도 바닥.


송숙희 작가의 <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을 읽다가 그때처럼 놀랐습니다. [스토리텔링으로 독자의 감성 건들이기]라고 떡하니 써둔 글쓰기 책이라니.

동사는 기본형 (~하다)를 중심으로 모습을 바꿉니다. <먹다 먹고 먹으니 먹어서> 이런 방식이죠. 명사형 전성 어미 (~기)가 붙어 품사가 바뀌기도 합니다. (먹다→먹기) (읽다→ 읽기) (울다 →울기)


동사의 활용은 기본형 (하다)에서 시작하는데, 이때 뜻을 가지 있으면서 변하지 않는 부분을 '어간' 다른 말과의 관계를 나타내며 변하는 부분을 '어미'라고 합니다. <먹다>의 어간은 (먹-)이고 어미는 (-다)입니다. <달리다>의 어간은 (달리-) 어미는 (-다)입니다.


<건들이기>는 '건들이다'를 기본형으로 해 어간을 (건들이-)로 본 겁니다. 여기에 동사를 명사로 바꿔주는 전성 어미 (-기)가 붙은 거죠. <건들이기>는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말에 '건들이다'라는 동사는 없습니다. '건드리다'를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으니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도 당연히 립니다.

이 작은 실수 하나로 "하버드의 150년 글쓰기 비법을 알려준다"는 처음의 큰 뜻이 순식간에 옹색해집니다. 틀려놓고도 "뭐 그런 걸 따지고 그래?"라며 당당하신 분들이 주변에 가끔 계십니다. 산에 오를 때 발이 걸려 넘어지는 건, 큰 바위가 아니라 작은 자갈이라는 걸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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