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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 Jul 03. 2024

긴자 할아버지 이야기

내가 목표로 하는 경제적 자유

 부유한 거리를 좋아한다. 돈과 여유가 흘러넘쳐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지는 그런 거리. 이를테면 수요일 11시 정도의 도쿄 긴자 같은 느낌의 거리 말이다. 그 시각 직장인들은 도시 위 빽빽한 빌딩의 벌집 같은 직사각형 한 켠 한 켠에 갇혀 있겠지만,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누군가의 긴자에서 활동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내가 '긴자 할아버지'를 만난 곳은 그런 긴자의 한가운데 사케집에서였다. 아,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내가 긴자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에 대해 굉장히 오래 알고 지낸 그런 친근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긴자 할아버지는 나와 일면식도 없을 뿐더러 이제는 그 사케집이 없어져 오래전 내가 대낮에 꾼 백일몽 같은 공상 속의 신기루 같은 존재라고 해도 부정하진 못하겠다.


 당시 나는 회사의 신입사원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보니 대학생 때는 시간이 많아도 돈은 없었지만, 직장인은 돈이 생겨도 시간이 없었다. 그 해는 회사의 실적도 무척 좋아서 쉬는 것에 대한 압박도 없었기에 나는 10월 늦은 여름휴가를 내고 도쿄로 혼자 훌쩍 떠나 한적한 긴자의 사케집에 앉아 있었다.


 당시 해당 긴자의 사케집은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외부와 맞닿은 벽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술이나 한잔하며 밖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기에 딱 좋았다. 사케 한두 잔에 취기까지는 아니지만 기분이 살짝 상기될 때쯔음 바깥에 하얀 세단 한 대가 다가와 주차했다.


 정확한 차종은 모르겠지만 그 차는 누가 봐도 한눈에 비싼 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잘 관리된 올드카 세단이어서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소유자의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 세단에서 하얀 백발의 노인이 한 명 내렸다. 그러고는 여유롭고도 정정한 걸음걸이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는 60대 중반 정도 돼보이는 모습에 깔끔한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격자 체크무늬가 들어간 정장은 세련돼 보이면서도 캐주얼해서 어딘가 격식 있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고는 들어와서 점원에게 나긋한 목소리로 사케에 관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곧이어 점원에게 시음용 사케 한 잔을 받고서는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수요일 정오가 다 되어가는 거리에서 느긋하게 사케 한잔 하는 사람은 나와 그 노인 밖에 없었다. 늦은 밤 고급진 바에서 값비싼 위스키도 아니고, 술집 거리에서의 가성비 좋은 소주도 아니었다. 몇 잔을 비교해 보고 사케 한 병을 구매한 뒤 노인은 유유자적하게 차를 놓고 거리 한가운데로 사라져 버렸다.


 노인, 그러니까 '긴자 할아버지'는 은퇴한 대기업의 임원이거나, 성공한 사업가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모든 건 내 편견에 불과하고 세상에서 가장 바쁜 노인이 잠깐 여유를 내어 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느꼈던 그 한적한 느낌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떠올리곤 한다.


 명품을 사지 않아도 값비싼 튜닝 외제 차를 도로 한 가운데서 몰지 않아도 좋다. 내가 원하는 적당한 수준의 사치를 원하는 시간에 부릴 수 있는 그 여유. 그 여유를 나는 가지고 싶어서 앞으로 변화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행복한 여유를 무엇보다 가장 값비싼 젊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그래서 세운 첫 목표가 천만 원이었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 아무런 근로소득도 없이 달마다 천만 원이 통장에 들어오는 삶. 지금 내 삶의 걸음걸이는 너무나도 빠르다. 그래서 이왕 빠른 거 조금만 더 빠르게 뛰어서 나도 되어보려고 한다. 긴자 할아버지가 아닌 젊은 긴자 아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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